'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후 쏟아진 개헌 논의, 지방분권 반드시 포함돼야 / 칼럼니스트 박창희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모든 지방이 외치고 또 외쳐도 열리지 않는 문이다. ‘지방분권’이란 대한민국 지상과제의 문이다. 역대 정권은 물론, 한국의 기득권층은 앞에서는 지방분권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호박씨’를 깠다. 중앙집권이란 단맛에 길들여져 나눠먹기가 싫었던 것이다.
지방분권은 20년 이상 묵은 국가적 과제다. 1995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시행 이후, 지금까지 각종 선거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선거이슈였지만, 한 번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방분권에 대한 지방의 골난 짝사랑은 현재진행형이며,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숙제로 던져져 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으로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개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순실이란 일개 민간인이 국정을 회치듯 농단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 국가 운영시스템 개혁 논의와 함께 조기 대선과 개헌이 빅 이슈가 된 형국이다. 전국적으로 타오른 촛불 민심은 국민주권을 받들고, 시대정신을 반영한 개헌을 요구한다. 또 최순실로 인해 확인된 고장난 한국호를 리셋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개헌의 시대정신 가운데 핵심 가치가 지방분권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현행 헌법은 9차 개정 헌법이다. 지난 1988년 2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무려 30년 가까이 헌법을 바꾸지 않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헌법은 1980년대 후반의 시대정신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헌법 개정의 총론은 이미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하지만 개헌의 필요성만큼 중요한 건 개헌의 형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시시때때로 개헌과 관련된 논란을 벌여왔다. 특히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등 정부 형태를 놓고 논쟁이 심화됐다. 개헌 논의 시기도 항상 문제였다.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복잡한 논쟁이 야기됐고, 갑론을박 끝에 유아무야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번은 상황이 특별하다.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상황이고 유력 대선 후보들과 언론이 앞다퉈 개헌을 외치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의 경우, 개헌 자체보다 국가 리셋에 방점을 찍고는 있지만, 개헌 수레바퀴는 이미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국면에서, 지방은 어떤 선택과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인가. 지방은 응당 ‘지방분권형 개헌’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국회, 그리고 기득권층의 기류는 지방의 요구와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분권형’은 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하거나, 권력구조 개편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지방분권엔 미온적이다. 지방분권은 그들이 누리는 권력의 분권, 기득권 축소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을 지방토호 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해석하는 편향된 시각도 존재한다. 게다가 정작 지역민들은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학습이 안 돼 있다. 지방분권을 둘러싼 정치 지형은 결코 지방에 유리한 구조가 아니다.
역동적이고 참신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갑자기 닥친 상황 변화만 믿고 구태의연하게 ‘지방분권형 개헌’을 앵무새처럼 외치다간 '닭 쫓는 개' 꼴이 되기 십상이다. 중앙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이 가진 권한과 권력을 결코 쉽게 내주지 않을 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지방의 생각과 결의, 실천 전략이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다.
먼저, 광장 촛불이 던진 메시지와 의미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상을 들여다본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몰려 나와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 국민주권을 합창했다. 또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대의제의 한계를 꼬집으며 대통령 하야를 부르짖었다. 거대한 촛불바다에 울려퍼진 국민들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지역감정에 기댄 지역패권 정치폐습을 타파하라,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어라, 일그러진 검찰을 바로 세워라, 일선 행정의 부패를 일소하라… 한마디로 대한민국호 구석구석에 적체된 구악을 걷어내자는 것이다. 촛불바다가 ‘시민혁명’으로 승화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혁명의 전운은 충분히 감지됐다.
이번 촛불 시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능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이들의 소통 구조는 매스 미디어에 의존하던 종전의 모습과 달랐다. 세대, 계층, 연령을 뛰어 넘어 스마트폰이 주는 연결성과 확장성을 무기로 소신껏 발언하고 양심껏 행동하면서 성숙한 민주의식을 보여주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이들이 체험한 현장 민주주의는 함께 살려나가야 할 값진 자산이 됐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연행 시민 한 명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가 놀란 ‘한국식’ 민주주의 촛불시위였다.
이들 주권자는 한마디로 ‘스마트 시민’이라 말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집회, 시위 등 참여방식이 ‘스마트’했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전한 대로 ‘촛불바다’는 ‘아름다운 민의의 출렁임’이었다.
지방분권 운동도 이와 같아야 하고, 이들 스마트 시민에 의해 꽃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촛불바다가 가져다준 소중한 메시지였다. 이른바 ‘스마트 분권운동’이다. 서울과 지방이 동상이몽인 개헌 문제도 ‘스마트 분권형 개헌’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시대적 과제인 분권형 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 지방분권의 가치가 녹아들어야 의미가 있다. ‘분권형’이란 개념에 미래지향적 권력 재편과 국가균형발전, 그리고 지방자치 확대 개념이 들어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스마트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부산이 이니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지방분권 운동은 대구가 알게 모르게 주도권을 쥐고 움직였다. 대구의 집요함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스마트 분권 운동’은 부산이 발의하여 동력을 만들어보자. 가령 ‘스마트 분권 플랫폼’(가칭) 같은 프로젝트를 펼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맹렬히 논의되는 마당에서 ‘스마트 시민’이 중심이 되어 국가적·지역적 과제를 풀면서 비전을 찾는 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스마트 분권 플랫폼’에서는 지역시민회의나 스마트 아카데미, 스마트시티 포럼, 스마트 융복합 창업센터, 스마트 매체 운영 등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할 수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같은 데서 집중 연구해 보았으면 한다.
중앙의 자장에 휘말려 수동적으로 가서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은커녕 지방의 작은 변화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변혁의 시대다. 스마트 혁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 분권’이란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만들어보자. 지방 스스로 혁신하고 눈뜨지 않으면 만년 서울의 그늘로 살아야 한다. / 전 국제신문 대기자·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