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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추석이 지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기온은 20도의 따가운 햇살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창덕궁을 보러갔습니다. 창덕궁에는 궁궐의 60%를 차지하는 후원, 즉 비원이 있습니다. 비원은 세계 어디에 가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창덕궁 입구 돈화문에 들어서니, 넓고 아름다운 궁궐의 자연 조건을 그대로 이용한 넓은 공간이 열려 있습니다.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자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몇 개의 연못과 아담한 규모의 정자가 어우러져 있어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넓은 후원은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 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야외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창덕궁 옆 창경궁은 조선왕조의 큰 비극이 일어난 곳입니다. 숙종이 장희빈을 처형한 곳이고, 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궁궐을 없애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짓고 그 이름도 창경궁이 아니라 놀이공원이란 뜻으로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우리 젊은 시절의 창경궁은 창경원이라는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더 친숙했습니다. 특히 봄철이면 창경원 벚꽃 놀이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습니다. 그후 1983년에 정부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복원사업을 진행해서 오늘의 모습은 물론 이름도 창경궁으로 되찾았습니다.
나는 한국의 궁궐에 있는 소나무가 좋습니다. 창경궁 통명전 앞에 있는 소나무가 특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통명전이 숙종과 장희빈을 둘러싼 비극의 무대였으며, 영조가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참혹하게 죽인 장소도 창경궁 어디였을 거란 사실을 알고 보면, 창경궁은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왕조의 비참한 역사는 17세기 초에 시작된 사색당파의 싸움에서 얼룩이 짙어졌습니다. 사색당파에 매몰된 조선왕조는 청나라와 일본의 외부세력에 휩쓸렸고, 결국은 19세기에 사악한 일본의 식민지로 몰락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왕조와 일제 침략을 거쳐서 이제 대한민국 공화국이 들어선 지도 오래 됐는데, 당파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파싸움은 권력에 대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형성되며 그 결말은 하나같이 국민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파국을 맞이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창경궁에 와서 이 참혹한 역사의 교훈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1956년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사실 나는 창경궁의 슬픈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채 동물원과 식물원을 재미있게 관람했고, 충청도에서 부모님이 서울 오셨을 때도 모시고 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이날 창경궁을 둘러 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과거와 현재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서 창경궁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