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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 공원서 이순신 장군의 투혼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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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 공원서 이순신 장군의 투혼 되새기다
  • 취재기자 한승완
  • 승인 2014.11.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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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당시 조선 수군의 좌수영 있던 곳...25의용단 유적도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의 <칼의 노래>, 2004년 이를 TV 드라마화한 <불멸의 이순신> 등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책과 TV드라마가 대중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최근 관객 176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명량>은 국내 영화사상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영화 <명량>으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다시 조명 받고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저지한 것은 이순신 장군뿐 아니라 평민들의 의병 활동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평민들의 넋을 기리는 유적이 부산 수영구에 있다. 수영은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 즉 수군사령부가 있던 지역이다. 수영(水營)이란 지명도 수군절도사영의 준말이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굳어졌다. 수영 전철역이 있는 수영 교차로의 팔도시장과 망미동 사이는 조선시대 수군절도사영 자리이며, 이곳에는 수영사적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사적공원으로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도심 속의 휴식처다. 수영사적공원에는 시 지정 유형문화재인 수영성 남문, 25의용단을 비롯한 무형문화재 3종, 천연기념물 2종, 안용복 사당 등 비지정 문화유적 5종이 있다. 수영사적공원 입구에는 조선시대 해상 전력의 요충지였던 수영성은 허물어져 없고 그 흔적인 수영성 남문만 남아 있다. 수영성 남문을 통과하면 한적한 공원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산책하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공원 나무 그늘 아래서 친구들과 장기를 두고 있는 주진영(76, 부산 수영구 망미동) 씨는 “운동하기도 좋고 늙은이들이 모여서 쉬기도 좋다”고 말했다.
▲ 수영사적공원으로 들어가는 수영성 남문과 25의용의 혼을 모신 25의용사당 담벼락을 타고 이어진 산책로 (사진: 취재기자 한승완)
남문에서 10m 떨어진 곳에는 400년은 족히 넘을 듯한 고목이 있다. 이 고목은 경상좌수영 수군을 지켜줬다는 군신목(軍神木)인 곰솔이다. 나무 높이는 27m, 둘레는 4.5m, 폭은 23.5m 정도이다. 조선시대 좌수영이 이곳에 진영을 갖추고 군선을 제조할 때마다 이 나무 신이 군선을 보호한다고 믿어 군사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곰솔나무 아래에 서면, 이 군신목이 명량대첩에서 혼신을 다한 12척의 배를 보호했을 거란 상상이 들기도 한다. 1592년 음력 4월 15일 오후 5시, 절영도(지금의 부산 영도)에서 군사훈련하던 정발 장군은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왜군을 발견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정발 장군은 곧바로 경상좌수사 박홍을 만나 화포로 선제공격하자고 제안했으나, 박홍은 겁을 먹고 한양으로 도주했다. 경상도 좌측 문을 터준 비겁자 박홍으로 인해 임진왜란 초기부터 조선 수군은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곰솔나무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착한 본성을 보존한다’는 뜻을 가진 존성문이 나온다. 이 문 안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싸운 무명 평민 의병들을 기리는 25인의 비석과 사당이 있다. 25의용(義勇, 혹은 義勇團)은 임진왜란 때 경상좌수사 박홍이 동래성과 부산진성을 모두 버리고 도망가자 마지막까지 부산을 지킨 의용단이다. 성의 수군과 주민 25명으로 이루어진 의용들은 성문 밖의 선서바위에 모여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라고 피로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왜적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다 모두 전사했다. 일반 비석과 다르게, 25의용단의 비석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린 25의용의 비장함이 핏빛 빨간색에서 느껴진다. 수영사적공원 근처 팔도시장 상인 최모(54, 부산 수영구 민락동) 씨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말고도 큰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25의용을 기리는 사당 내부에 있는 25명의 의용들을 기리는 비석(출처: 수영고적민속보존예술협회)
25의용단의 사당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독도를 지킨 안용복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보인다. 안용복은 수영 출신으로 좌수영 수군의 능로군(노 젓는 병사)에 속해 있던 군졸이었다. 부산 왜관을 자주 드나들어 일본말에 능통했던 그는 1693년(숙종19)과 1696(숙종 22)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를 침략한 왜인들을 몰아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 받아왔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곳을 찾은 고등학생 최은창(18, 부산 연제구 연산동) 군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안용복이 부산 출신인지도 몰랐고 부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 안용복의 사당과 동상 (사진: 취재기자 한승완)
수영사적공원은 역사유적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인 수영야류, 좌수영 어방놀이, 수영농청놀이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는 수영사적공원의 존재를 알리고 수영에 관련된 민속도 알리려는 취지로 매년 네 차례 수영야류 등 무형문화재 정기공연을 이곳에서 갖고 있다. 그런데 공연마다 평균 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적공원을 찾아주지만, 수영사적공원을 무형문화재 공연 장소로만 기억하고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지로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1995년 3월 1일 수영구청 개청과 더불어 수영의 뿌리 찾기 일환으로 수영사적공원 정비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영구청은 잔여 성곽과 치성(성의 구조물의 일종), 그리고 다른 성문들을 복원하고 문화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수영사적공원 복원사업은 수영성지 땅을 완전히 매입해야 마무리된다. 여기에는 무려 5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매년 수영구가 사적지 매입에 책정되는 예산은 10억 정도로 수영성 복원 사업은 아직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하다.

수영사적공원의 복원 사업은 수영구청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수영고적민속보존협회는 수영에 관련된 수영야류, 수영어방놀이 들의 무형문화재 전승활동과 시설물 관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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