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장, 잘 나가던 사업가서 '관부 재판' 이끌며 일제 만행 고발 / 백창훈 기자
“어린 나이에 끌려가 생지옥을 살았다. 바라는 것 하나 없다. 열일곱 그때 내 모습으로 돌리도!”
영화 <허스토리> 중 배정길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의 대사 일부다.
1992년 부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에 대한 공식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 용감한 4명의 할머니들의 재판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가 지난 27일에 개봉했다.
영화의 소재인 ‘군부 재판’은 1992년 12월 25일부터 1998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26번이나 왕복하며 일본 국회 및 UN총회에서 일본의 공식사죄와 보상을 제기한 재판이다. 그 결과, 동남아 11개국 중에 유일하게 일본으로부터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으로 기록됐다.
이 재판의 중심에는 영화 속 문정숙 사장의 실제 인물인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이 있었다.
김문숙 회장은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교 졸업 직후 여성단체를 조직해 글자를 모르는 여성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치는 계몽 운동을 했다. 그 후 광복 전 학교에서 배운 일본어로 통역 안내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후 주변에서 관광 사업을 시작해 보지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시험을 합격해 여행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러던 중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부산 중앙동에 ‘아리랑 관광’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관광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생 관광을 목적으로 한 일본인 입국 금지 시위를 했다. 시위를 지켜보던 일본인은 ”몇십 년 전에 조선 처녀들이 중국에 몸을 팔러 갔을 땐 우리가 가난해서 돈을 못 줬지만 지금은 돈을 줄 수 있는데 왜 반대하냐“는 질문에 우연히 위안부를 알게 됐고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다짐했다.
김 회장은 영화 내용과 실제 재판 과정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다.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다면 일본인이 한국을 낮잡아 봐 사증 발급받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뒷돈을 주고 가까스로 발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서 나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재판 증언 내용보다 실제는 더 심했다. 일본 군인들이 말을 안 들으면 칼로 배를 찌르기도 하고 강제로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재판 과정이 늘 힘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시모노세키에서 재판이 끝나고 후쿠오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올 때 할머니들께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노래를 부르셨다. 하지만 그 노래가 일본 군가였다. 왜 많은 노래 중에 일본 군가를 부르냐고 물어보니 아는 노래가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걸 듣고 있자니 너무 원통하면서도 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또 김 회장은 영화 제목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췄다. 그는 “나도 영화 제목이 영어라 조금 아쉽다. ‘일본의 사죄’, ‘위안부 할머니들이 투쟁’이라든지 (이렇게) 내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제목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김 회장은 자신의 전 재산과 일생을 위안부 문제에 바쳤다. 그는 “위안부가 아직까지 일본에 몸 팔러 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 희생자들의 명예를 우리가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내 인생을 여기에 건 이상 끝을 봐야한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구하라”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 <허스토리>는 개봉 일주일이 지난 현재 관객 수 22만 명을 기록하며 상영영화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양민철(25, 부산시 수영구) 씨는 상영관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는데, 생각보다 상영관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