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광주지법서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첫 재판...이순자 씨 “남편, 금방 들은 것도 기억 못해 법정진술 무리” 주장 / 신예진 기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87)이 첫 재판 하루 전 법정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 논란이 예상된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27일 광주지법에서 진행되는 첫 재판을 하루 앞둔 26일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는 이날 전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전 전 대통령의 공판 출석은 법리 문제를 떠나 아내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난감하다"며 "광주지법에 대학병원의 관련 진료기록을 제출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현재 건강 상태를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의 현재 인지 능력은 회고록 출판과 관련해 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어도 잠시 뒤에는 설명을 들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그동안 적절한 치료 덕분에 증세의 급속한 진행은 피했지만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런 정신건강 상태에서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고, 그 진술을 통해 형사소송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정상적 진술과 심리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살펴볼 때, 또 시간 맞춰 약을 챙겨드려야 하는 사정 등을 생각할 때 아내 입장에서 왕복에만 10시간이 걸리는 광주 법정에 전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출석하도록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4월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사자(人死了)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가면을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할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적시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전 씨가 허위사실을 적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지난 5월 전 씨를 재판에 넘겼다. "광주에 출동한 헬기가 시민들에게 실탄을 쐈다"는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헬기 사격이 사실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
광주지법은 전 씨 측이 두 차례 미룬 끝에 내일 오후 2시30분으로 잡은 첫 재판에 대비해 방청석 약 100석 규모의 대법정을 비워놓고, 방청객들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줄 번호표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내일 열리는 재판을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죄와 회개를 요구하고 있다.
5·18 3단체(민주유공자유족회,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와 5·18기념재단은 26일 "이번 재판이 전두환의 책임회피와 부정의 연극무대가 아닌 뉘우침과 회개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성명서를 내고 "5·18 국가폭력을 주도한 전 씨는 진실을 밝히고 5월영령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