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필리핀을 중흥시키고 훗날 막사이사이 상(賞)까지 제정되면서 지금도 기림을 받는 필리핀 대통령에 얽힌 일화가 있다. 당시 언론을 통해 보도가 돼 큰 화제가 되었었다.
막사이사이 대통령(1907-1957)이 교통위반을 해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차를 세운 경찰이 면허증을 제시하라며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막사이사이는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통단속 경찰은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며 "대통령 각하,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교통위반을 했으니 벌과금 통지서는 발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흔쾌히 '딱지'를 받아들고 그 자리서 떠났다. 너무도 당연한 법집행이지만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대통령에게 벌과금을 부과한 교통경찰의 용기와 법집행의 '공정성', 그리고 역시 흔쾌히 벌금을 받아들인 대통령의 권력 자제와 '겸손'은 그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의 표상이요 사람이 살 만한 가치의 한 실현이 아닐 수 없다. 쥐꼬리만한 권력은 물론, 나라를 흔들 수 있는 권력도 함부로 휘두르는 세상을 너무도 자주 보아온 우리들에게는 한참이나 생각을 머물게 하는 아름답고 신선한 '삽화' 한 자락이다.
권력의 본질적 속성은 남의 의사를 강제로 복종시키는 ‘폭력'이다. 따라서 권력은 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국민의 동의를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권력은 정당성도 없고 생명력도 길지 않다. 한데 현실에서는 국민과 권력의 이러한 관계가 쉽게 잊히고, 또 권력은 쉽게 오만해지거나 자제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정상은 아닌데 권력이 국민의 선택과 동의를 받는 순간, 권력은 국민의 동의 위에 올라서는 모양새가 된다. 국민이나 권력 모두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믿게 된다. 인민(人民群众) 민주주의가 앞에 붙은 나라일수록 이러한 비(非)인민민주주의 행태가 훨씬 더 심각하다.
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권력이 적절하게 행사되고, 또 국민을 상전으로 받드는 자세가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는 역시 국민의 대표로 뽑은 국회, 사법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공공 역할을 부여받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균형 있게 작동, 견제하고 감시할 때 결정된다.
지금 우리 현실은 이 이상적 모델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 있는지 눈여겨 돌아볼 일이다. 4.19혁명이나 최근의 촛불시위, 그리고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 등이 권력 감시나 견제라는 본래 모습과 위상에 걸맞게 평가받고 있는지, 윤동주의 시 구절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지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다잡아 뒤돌아봐야 할 엄중한 시점이다. 가령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엊그제 국회를 통과한 시간강사법, KTX 철도의 SRT 합병 등 이런 정책이 그 수혜대상자들의 처지와 입장을 얼마나 심도 있게 살펴봤는지 많은 이해 당사자, 즉 국민들은 강하게 묻고 있다. 권력은 경청하고 대답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