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부산의 한 아오리 라멘 매니저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을 뒤흔든 ‘버닝썬 게이트’의 여파로 관계된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곳은 ‘승리 라멘집’으로 알려진 일명 ‘아오리 라멘’이다. 승리에 대한 거부감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자연스럽게 매출이 급락했다. 승리는 과거 클럽 버닝썬의 사내이사이자, 아오리 라멘의 본사인 아오리 F&B의 대표였다. 현재 승리는 모든 자리를 내려놓은 상태다.
지난 26일 정오, 부산 대학가의 한 아오리 라멘은 대체로 썰렁했다. 점심시간에 이제 막 들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근처 다른 음식점과 비교했을 때 손님의 발길이 드문 편이었다. 인적이 드문 음식점에는 일본 노래만 허공을 떠돌았다. 해당 매장에서 기자가 약 30분가량 라멘을 먹는 동안, 옆에 길게 늘어선 8개 테이블에 착석하는 손님은 없었다.
부산 내 다른 아오리 라멘 가맹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각 가맹점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승리 사건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매출 하락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조심스러운 듯했다. 대학가에 위치한 매장 직원 A 씨는 “승리 사건 이후 손님이 준 건 사실이다.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는 손님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손님이) 확실히 줄었고, 손님들도 ‘손님 별로 없죠?’라는 식의 질문을 한다”고 했다.
다만 가맹점의 위치에 따라 편차는 있었다. 기업들이 밀집된 지역에 입점한 아오리 라멘 매니저 B 씨는 “대부분 손님이 이 근처 직장인이다 보니 크게 타격을 받진 않는다. 어떤 손님들은 라면은 죄가 없다는 식의 말을 한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동네에 있는 아오리 라멘 매니저 C 씨는 “한국인 손님은 줄었고, 외국인 손님은 여전하다. 물론 예전처럼 1시간 정도의 대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아오리 라멘의 매출 급감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아오리라멘 가맹점은 국내 43개, 해외 5개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4개 카드사(신한·KB국민·현대·삼성)로부터 관련 서류를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버닝썬 사태가 최초 보도된 지난 1월 28일 이후, 2월 하루 평균 카드 결제액은 전달인 1월과 비교해 22.9%p 감소했다. 3월에는 1월 대비 46.7%p까지 떨어졌다. 오너의 일탈로 매출이 사실상 반토막이 난 셈.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 매출 규모는 약 39억 8000만 원, 영업이익은 약 6억 4700만 원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오리 라멘 가맹점들은 ‘승리 지우기’에 돌입했다. 경기도 부평점은 지난 24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저희 매장은 승리 씨와 전혀 친인척 관계가 없는 순수가맹점”이라면서 “클럽 버닝썬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매장”이라고 공지했다. 서울 신림점 역시 지난 22일 “전 빅뱅 승리와 신림점과는 전혀 무관한 관계임을 알려드린다. 항상 맛 좋은 라멘을 손님께 제공하는 신림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오리 라멘은 그간 ‘승리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빅뱅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게 내부 곳곳에 승리 사인이나 사진 등을 부착했다. 승리가 콘서트를 개최하면, 아오리 라멘에서는 라면 한 그릇에 승리 콘서트 응모권 한 장을 내 걸기도 했다.
승리 역시 직접 아오리 라멘 홍보에 뛰어들었다. 서울 지역의 명동점과 홍대점은 승리의 가족이 운영했고, 그는 지역 가맹점을 방문한 사진을 본인의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그는 방송에서도 라멘 프랜차이즈 기업을 경영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승리 라멘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오리 라멘 측은 승리와의 관계 정리에 나선 상태다. 아오리 F&B는 최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이승현(승리) 대표 사임 후 가맹점의 안정적인 영업을 위해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지난 7일 가맹점주들과 대책 회의를 열고 1차적인 보상 방안을 제공했다"며 "사태 전개에 따라 추가적인 점주 보호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오리F&B는 또 “기존 가맹점주 및 아오리 라멘 브랜드 보호를 위해 승리, 유리홀딩스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F&B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가맹점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와 회사 경영권 양도를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아오리 라멘은 과연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