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여, 바이든을 뽑아라’(NYT),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WP). 미국 양대 권위지가 올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Joe Biden) 지지를 선언했다. 사설을 통해서다. 두 유력지는 논설진의 연구·토론 끝에, 그 지지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이른 바 ’대통령의 조건‘이다.
주요 신문의 특정후보 지지선언, 괜찮은가? 괜찮다. 신문의 보도·논평 기능에 따른 것이며, 그 영역은 정치적 평론의 자유도 포함한다. 방송과는 다른, 신문의 특장(特長)이다. 그 특정후보 지지선언은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라 할 만하다.
그 지지선언, ‘신문의 지지’일 뿐 ‘보도의 지지’는 아니다. 사설을 통해 회사 차원에서 지지후보를 공표하되, 보도에선 공정성을 유지한다. WP의 전설적 편집인 벤자민 브래들리(Benjamin Bradley)는 후보 지지선언 사설을 게재한 뒤, “보도면은 사설과 달리 어디까지나 공정할 것”을 약속, 독자의 신뢰를 구축했다.
한국 신문도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우리 ‘신문윤리강령’은 ‘정치적 평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사설 등 평론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특정정당 또는 특정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를 표명하는 등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한국 신문이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한 사례는? 없다. 신문들은 주요 선거 때마다 ‘정치적 중립’의 전통을 과시(?)하고 있다. 1960년대 ‘상업지’가 등장한 이래, 늘 ‘불편부당’을 강조해 온 관행이다. 그래도, 독자들은 안다, 그 신문들이 보도에서 발휘해 온 이념적 색채며 교묘한 정파성을.
겉으론 ‘공정’을 표방하며 보장받은 ‘정치적 평론의 자유’도 사양한다. 속으론, 교묘한 불공정 행태로 지지선언 이상의 편파적 보도를 하기 예사다. KPF(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를 보면, 국민들은 선거보도를 불신하는 이유로, 불공정·편파보도와 정보의 피상성을 주로 지목한다.
그래서, 미국 권위지의 특정후보 지지선언은, 참 부러운 전통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논설진이 오랜 가치 추구와 연구·토론을 통해 대통령의 조건·품성을 평가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니, 유권자가 갖는 그 정보, 얼마나 깊이 있고 유익할 것인가.
1. ‘미국이여, 바이든을 뽑아라’(Elect Joe Biden, America).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바이든은)불안하고 혼란한 시대에 정책이나 이념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나라(미국)가 지금 필요로 하는 지도자’로 평가한다.
NYT는 “바이든 후보가 법치를 수용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는 능력과 자격, 원칙을 갖춘 인물들이 포진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또, “바이든 후보가 차기 대통령 직무의 가장 우선순위에 ‘미국 시민’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보다 인물 경쟁력도 앞선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Joe Biden For President).'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 9월 29일(현지시간), 일찌감치 바이든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WP는 사설에서, 바이든을 “미국의 품위·명예·유능함을 복원할 대통령”일 것으로 평가했다.
WP는 "현대 최악의 대통령을 쫓아내기 위해 많은 유권자가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투표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자아도취·냉소주의와 달리, 바이든은 미국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이제 가치와 성과가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노하우와 경험을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명예롭고 성공적인 행정부를 이끌 수 있는 후보 조 바이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2. NYT와 WP의 두 유력후보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선 그동안 사설·칼럼을 통해 꾸준하게 비판해 온 바를 새삼 강조하고 있다. NYT는 트럼프 당선 이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집중 게재했다.
최근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는 NYT 칼럼 연작에 바탕한 역작이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자블랫, 두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는,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음을 발견한다. ‘선거에 의한 독재자의 선출과정’,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지도자’...,.
이른바 민주주의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이다. 특히 트럼프의 전제주의(專制主義) 행동을 분석,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4가지 신호’로 규정했다.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경향이다.
WP는 또 어떤가. 그 신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부당한 선거공작과 국민에의 거짓말(워터게이트 사건)을 집중추적, 결국 권좌에서 몰아낸,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에 철저한 권위지다. 세계 언론자유 확립의 금자탑이라 할 ‘미 국방성문서 보도 사건’ 때도, 권력의 숱한 위협을 무릅쓰고 계속 보도를 강행한 정론지다.
당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발행인에게 말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당시 언론과 권력의 갈등을 판단한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간명하다.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으며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다.”
3. 두 권위지의 바이든 지지선언 사설, 그 문맥은 준열하다. 특히 트럼프의 비재(非材)와 불비(不備), 민주주의 파괴에의 책임을 엄히 비판한다. 그리고, 지난 4년 ‘잃었던 시간’을 회복할 바이든에의 기대와 신뢰를 설득력 있게 강조한다. 대통령의 품성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사설의 흐름은 극히 대조적이다. WP가 트럼프의 결함과 과오를 직설적으로 찔러 말했다면, NYT는 바이든의 품성과 경험을 들어 대통령에의 적합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며, 그 규범을 수호하는 ‘사람’임을-.
[WP 사설 부분] 현대 최악의 대통령을 추방하기 위해 많은 유권자가 투표할 뜻을 갖고 있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유권자들은 자신의 기준을 낮출 필요가 없다. 바이든은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이 직면할 벅찬 도전에 대처할 품성과 경험에서 매우 우수하다.
트럼프의 자기도취와는 대조적으로, 바이든은 공감능력이 탁월하다. 트럼프의 냉소주의 대신, 바이든은 미국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준다. 트럼프가 반대자와 동맹국 모두를 경멸하고 악마화하는 대신, 바이든은 정부가 가장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깊이 헌신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전 세계에서 위험에 처해 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옹호하라. 트럼프의 부정적인 예는 다른 인간에 대한 품위, 공감 및 존중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보여준다. 바이든 같은 명예롭고 성공적인 행정부를 이끌 수 있는 후보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WP는 사설을 게재하며 참고자료를 붙였다. 위험에 처한 민주주의의 실상이며, 트럼프가 초래한 해악을 다룬 일련의 사설 목록이다. 물론 WP는 바이든의 정치, 경제, 외교, 보건 부문의 정책역량을 함께 설명한다.
[NYT 사설 부분] 조 바이든은 ‘미국의 영혼을 회복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이 나라가 4년 전보다 더 약하고, 덜 희망적이며, 더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바이든은 법치주의를 수용하고 민주적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그는 미국의 동맹국들과 우리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적들에 맞서 싸울 것이다. 올 투표에서 유권자들은 단지 리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법치에 찬성할지, (...)지구 온난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바이든은 완벽한 후보도 아니고 완벽한 대통령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완벽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예술에 관한 것이고, 미국이 더 나아지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4. 그 사설들은 두 후보의 경쟁력을 확연하게 구분하고 있다. 바이든의 품성이며 정책적 역량에 대한 기대에, 트럼프의 위험성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이다. 트럼프를 규정하는 부정적 표현을 보라. ‘현대 최악의 대통령’, ‘축출·추방’, ‘다른 인간에 대한 품위·공감·존중의 결여’, ‘4년 전보다 더 약하고, 덜 희망적이며, 더 분열된 나라’....
특히, 사설들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험을 경고하며 ‘법의 지배’를 강조한다. 트럼프가 자행한 민주주의 위협행위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상대편을 억압하는 반자유주의적 대중독재를 경계하는 것이다. 언론의 그 적극적 권력 감시·비판이며, 심층적 정보 제공은, 그래서 참 부럽기도 하다.
5. 미국 언론의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보며, 한국 언론이 깨우칠 시사점은 뭔가. 특히, 미국 주류언론이 실망하고 분노한 트럼프의 그 민주주의 위협징후에, 우리 역시 둔감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가 촉발한 그 위협신호 4가지를 보라.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경향....
우리에겐 그저 낯선 징후인가. 혹, 어떤 데자뷔를 느낄 순 없는가? 거꾸로 묻는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 노력하는가, 정치 경쟁자를 인정하는가, 언론의 기본권을 억압하지는 않는가. 두루 ‘그렇다’고 당당할 수 있는가?(차용범, 한국 민주주의는 건강한가?: ‘민주주의의 위기신호’ 앞에서).
대통령은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전제하며, 굳이 ‘언론개혁’을 거론한다. 정권의지를 담은 정책을 입법 없이 우회 강행한다. 정치 경쟁자에의 인정·배려에 인색, 극심한 국론분열 상황을 반복한다. 대통령의 취임사에 관류하는 정신들은 그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김민환).
이쯤이면, 우리 언론의 다짐도 뚜렷해야 할 터다.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켜 왔던 기본규범을 되살리기 위해,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언론이 맡아야 할 몫은 무엇인가? 한국 신문, 이제 객관주의 프레임을 버리고 강력한 담론 설정에 나서야 한다.
한국 신문,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그 낡은 관행부터 극복해야 한다. 한국 언론의 특징적 현상은 어차피 정파성의 양극화다(남재일). 신문은 다원주의를 지향한다. 다양성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인식 위에, 정파적인 다수가 다른 의견을 내며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건 어떤가. 미국 신문이 그렇듯, 사설·칼럼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논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의 특정후보 지지선언, 한국 신문이 도전해야 할 과제요 기회다. 신문이 대통령의 조건·품성을 자신 있게 평가하며 국민에게 깊이 있는 정보를 제시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과제를 완수한다면, 신문은 진정 언론의 몫에 충실하며 신문의 강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