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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1]미국 언론과 대선 보도: 진실추구 신념·열정, 탄탄한 대중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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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1]미국 언론과 대선 보도: 진실추구 신념·열정, 탄탄한 대중 신뢰···
  • 시빅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0.11.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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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할 수 있다, 트럼프; 승복하기는 어려워도 유권자는 말했다( You Can Do This, Donald Trump; It's hard to concede, But Voters have Spoken). 미국 권위지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오피니언 비디오’ 제목이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를 겨냥, ”살다 보면,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다“면서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미국 주류언론은 신문·방송 가릴 것 없이, 이번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에게 냉엄했다. 그건 지난 4년 트럼프가 부추겨 온 권력-언론의 갈등관계의 영향도 있다. 선거패배 후에도 승복을 거부하는, 그 민주주의 파괴현상에, 언론도 분노하고 실망했다.

트럼프는 내내, 미국 언론이 추구해 온 가치와 신념에 저항했다. 언론은 진실 추구 및 민주주의 수호에의 굳은 신념과 열정으로, 굳건한 대중의 신뢰를 쌓아 왔다. 민주주의·자본주의를 통한 자유주의 국가질서, 진실과 언론자유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언론은 이 부분을 추궁하며 트럼프를 응징했다.

1. NYT의 오피니언 비디오 ’You Can Do This···' 감성적 설득력이 뛰어나다. 영상은 1분 42초, 많은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며 묵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인생에는 승자도, 패자도 있다”는 대사로 영상을 열며, 미국인이 사랑하는 여러 스포츠의 승자-패자 결정 순간을 보여 준다.

NYT의 오피니언 비디오 “트럼프, 당신은 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 속의 묵중한 교훈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며, 트럼프의 승복을 권하고 있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NYT의 오피니언 비디오 “트럼프, 당신은 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 속의 묵중한 교훈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며, 트럼프의 승복을 권하고 있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야구((MLB)의 월드시리즈, 아이스하키 리그(NHL) 파이널에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테니스의 세레나 윌리엄스···, 그 세계적 스타들의 환희와 실망의 표정이 생생하다. 어린이들은 유소년 경기며 퀴즈대회, 체스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한편의 환호와 한편의 눈물을 함께 보여주고-.

그리곤, 대선 패자들의 승복 순간이다. 끝부분은 트럼프를 소환한다. 트럼프가 거대한 워싱턴 기념비를 배경으로 백악관 뒤뜰을 걷는 장면이다. 마지막 대사,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은 할 수 있다. 이제 승복해야 할 시간이다!”

NYT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에세이나 다큐멘터리·시사에 관한 사실 설명을 위해 ‘오피니언 비디오’를 제작한다. 비디오 저널리즘(video journalism) 방식의 영상 사설이다.

2. 영상에 나타난 ‘패자’는 앨 고어부터 존 매케인까지. 패자의 승복 연설은 미국의 전통적 불문율이다. 1896년 윌리엄 브라이언이 당선인 윌리엄 매킨리에게 축하전보를 보낸 이래의 전통이다. 트럼프가 불복 의사를 밝히며, ‘우아한 승복’의 전통을 124년 만에 깨고 있다.

승복 연설의 공통적 내용은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존중, 승자를 위한 기도·지지, 지지자 간 분열 치유 노력, 순조로운 권력이양 약속 등이다. 그저 승복의 형식을 넘어, 자신의 지지자에게 패배를 같이 받아들이라고 보내는 신호다. 최근 미국 언론들도 승복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00년 대선 때 앨 고어의 최종 승복연설. “조금 전 조지 부시에게 전화해 43대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했다”로 시작했다. (납득 못 할) 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대하지만, 우리의 단결과 우리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4년 전 트럼프에게 패한 힐러리 클린턴. 그는 트럼프보다 전국 득표에서 280만 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패배했다. 그는 연설에서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나라를 이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승복했다.

존 매케인의 승복 연설도 ‘우아한 승복’의 전형이다. 그는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한 뒤, “이번 선거는 역사적 선거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는 대목에서 야유를 보내는 지지자에게 “제발”이라며 진정시키기고 했고(중앙).

3. NYT의 의견(Opinion) 면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찌감치 사설 ‘미국이여, 바이든을 뽑아라’를 썼다 도널드 트럼프의 ‘개표 중단’ 요구 때, 사설 ‘끝까지 개표를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바이든의 승리 확정 때는 사설 ’마침내, 조 바이든 승리‘로 대선 의미를 평가했다. 트럼프가 불복하려 하자, 이번 영상 사설로 그를 압박하고 나섰고.

그뿐인가. ‘트럼프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방법’, ‘선거 후 감격하다; 내 불안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긴 국가적 악몽은 끝났다'···. ‘의견’면 기사 제목들이다. ‘지옥은 트럼프가 경멸하는 것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제목의 칼럼니스트 대담 기사 관련사진, 트럼프의 회견장 ‘EXIT'(퇴장) 전광판을 부각하고 있다.

NYT의 오피니언면 기사 사진. 트럼프의 백악관 회견장면 중 ‘EXIT' 전광판을 부각시켜 트럼프의 퇴장을 촉구하는 이미지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NYT의 오피니언면 기사 사진. 트럼프의 백악관 회견장면 중 ‘EXIT' 전광판을 부각시켜 트럼프의 퇴장을 촉구하는 이미지다(사진: NYT 온라인판 캡처).

NYT, 워싱턴 포스트(WP), USA 투데이 같은 신문뿐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ABC·CBS·NBC 방송 3사와 ‘친 트럼프’ 폭스뉴스, 트럼프가 애용해 온 ‘트위터’ 역시 트럼프의 양식 없는 언행에 엄하게 대응했다. 3대 방송사가 트럼프의 회견을 중계하다, 근거 없는 ‘선거 부정’ 주장에 중계를 끊었다. 대통령 회견 중계를 끊는 초유의 사건이다.

NBC는 화면을 끊으며 "대통령이 너무 많은 허위 주장을 하고 있어 여기서 끊을 수밖에 없다"고 알렸다. ABC는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하며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CNN은 현장중계 뒤, 방송사 입장을 덧붙였다. "대통령이 선거에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이며,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공영방송 PBS도 회견을 생중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 관해 허위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자막을 달았다. 폭스뉴스는 며칠 전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회견 역시 생중계를 중단했다. 대변인의 ‘불법투표’ 주장에, 폭스뉴스 카부토 앵커는 바로 중계를 끊곤 덧붙였다.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이를 시청자들에게 태연히 보여줄 순 없다"고.

카부토 앵커는 이전에도 코로나19에 관한 트럼프의 근거 없는 주장을 비판하다 트럼프의 반발을 받곤, 정면 대응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일은 당신을 취재하는 것이지 당신을 찢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트럼프가 애용하는 트위터 역시, 그의 트윗에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경고딱지를 여러 차례 붙였다. 페이스북은 트럼프의 게시물마다 “"당선 유력인 후보는 조 바이든입니다"라는 코멘트를 붙이기도 했고.

SNS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의 게시글에 경고 문구를 붙였다. “진실을 알아보라”는 문구다. 그의 글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사진; 트위터 캡처).
SNS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의 게시글에 경고 문구를 붙였다. “진실을 알아보라”는 문구다. 그의 글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사진: 트위터 캡처).

4. 미국 언론들은 왜, 트럼프에게 이처럼 매정한가.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임기 내내 언론을 ‘가짜뉴스’로 싸잡아 비판했다. 언론을 의도적으로 때리며 지지자의 언론 불신·혐오를 높이는 전략이다. 취임 후 중앙정보국(CIA)을 찾아 언론인을 겨냥, “지구상에서 가장 부정직한 인간들”이라고 비난했다.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인파를, 8년 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연설하며 봤다. 광장엔 100만, 아니 150만 명이 몰려 있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첫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거짓보도’를 규탄하며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예고된 갈등이다.

트럼프는 최근 백악관에서 CBS 앵커와 인터뷰하다 40분 만에 중단했다. 트위터를 통해 “거짓이자 편파적 인터뷰”라고 몰아세웠다. 이번 유세 현장에서도 기자들에게, “바이든은 범죄자다. 그걸 보도하지 않는 당신들도 범죄자”라고 비난했다. CNN이 코로나 소식만 보도한다며 “바보 자식들”이라고도 했다(미디어오늘).

5. NYT·WP 같은 권위지의 대선 전, 바이든-트럼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특히 트럼프에 대해선 그동안 사설·칼럼을 통해 꾸준하게 비판해 온 바를 새삼 강조했다. NYT는 트럼프 시대에,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집중 게재했다. 그 칼럼 연작 모음,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다.

권위지의 바이든 지지선언, 그 문맥은 준열했다. 특히 트럼프의 비재(非材)와 불비(不備), 민주주의 파괴에의 책임을 엄히 비판했다. 트럼프를 규정하는 부정적 표현을 보라. ‘현대 최악의 대통령’, ‘축출·추방’, ‘다른 인간에 대한 품위·공감·존중의 결여’, ‘4년 전보다 더 약하고, 덜 희망적이며, 더 분열된 나라’···.

특히, 사설들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험을 경고하며 ‘법의 지배’를 강조했다. 트럼프가 자행한 민주주의 위협행위를 열거하며, 상대편을 억압하는 반자유주의적 대중독재를 경계했다. 미국 언론의 그 적극적 권력 감시·비판이며, 심층적 정보 제공은, 그래서 참 부럽기도 하다.

미국 언론의 강건한 경쟁력, 그 뿌리는 확실하다. 진실 추구 및 민주주의 수호에의 투철한 신념과 불같은 열정, 그에 바탕한 대중의 신뢰다.

NYT 논설진은 자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선언한다. “논쟁적 목소리 속에서, 오랜 기간 검증해 온 제도적 가치에 바탕한 시각을 제공할 것”, “민주주의·자본주의를 통해 자유와 진보가 발전하는 자유주의 국가질서 지지” 같은 표현이다.

그들은 확인한다, “창업자가 말한 ‘건전한 양심의 자유로운 행사’를 옹호하며,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이 곧 폭정에 저항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할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USA Today 논설이 옹호하는 가치도 같다. ”진실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지지“다.

최근 미국 언론의 대선보도를 보고, 한 국내 매체는 지적했다, “한국 언론은 대선 후보 생중계 끊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 언론의 과제가 그 뿐이랴. 우리 소통단절의 위기, 무기력한 야당·어용 지식인·'친여 언론'의 득세를 드는 분석도 있지 않나. 한국 언론, 특히 ‘친여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신념은 과연 무엇인가.

이 부분, 한국 언론이 절실히 깨우쳐야 할 시사점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켜 왔던 기본규범을 되살리기 위해,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언론이 맡아야 할 몫은 무엇인가?

한국 언론,, 이제 그 지독한 진영논리를 극복하며, 언론답게,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추구해야 한다. 미국 ‘국방성문서 보도사건’ 당시 언론-권력의 갈등을 판단한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간명하다.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으며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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