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비스트’ 사랑 덕분
SNS 팔로워 4000명을 바라보고 있는 팬 계정, 금손 ‘단군’
유튜브에 패러디 영상부터 플레이리스트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 중
“동운아 커튼콜(곡 이름)도 한번 말해 봐도 될까?”
자정을 넘긴 시각, 한 아이돌 팬은 가수에게 신청 곡을 불러줄 수 있냐는 글을 조심스레 올린다. 가수는 10분이 채 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으로 답장을 해준다. 팬이 신청한 곡을 실시간으로 부른 영상이다. 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20만이 넘는 조회 수를 달성하게 된다.
부산 모 대학에 재학 중인 박지민 씨는 13년 동안 한 아이돌 그룹만을 좋아하며 특별한 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박 씨는 현재 이 대학 교육학과 부학회장이며,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꿈꾸는 열정적인 사범대생이다. 학업으로 24시간이 부족한 그녀에게는 또 다른 ‘부캐’가 있다. 바로 ‘금손 선생님’. ‘금손’은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선생님’은 무언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일종의 인터넷 밈이다. 두 단어를 합치면 손재주가 너무 뛰어나서 우러러보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SNS 팔로워 약 3900명과 함께 어느 아이돌 팬덤의 빛이 되어주는 그녀와 짧은 인터뷰를 가져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은 ‘하이라이트’. 이 그룹은 조금 특이한 경력이 있다. 일명 경력직 신인. 그룹 이름을 바꿔 새 이름으로 다시 데뷔를 한 그룹이다. 2009년 ‘비스트’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해 2016년 전 소속사를 나오는 과정에서 그룹명 분쟁을 겪고 새 이름 ‘하이라이트’로 다시 한번 데뷔를 하게 된다. 현재는 멤버 본인들이 직접 설립한 자회사 ‘어라운드 어스’에 하나뿐인 소속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여전히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돌 그룹이다. 연차가 오래된 그룹인 만큼 국내 팬덤의 힘이 강하다지만 지민 씨의 사랑은 조금 더 특별하다. 본인만의 사랑방식으로 팬덤과 가수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머니들은 정직하세요. 어머니들은 ‘노래를 잘 하는 가수’를 좋아해요”
지민 씨가 아이돌 ‘하이라이트’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켜둔 음악방송에서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노래를 잘 부르던 ‘비스트’(현 하이라이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했다. 지민 씨의 어머니는 딸의 첫 핸드폰 벨 소리를 당시 인기곡이었던 비스트 ‘beautiful’로 설정할 정도였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어머니는 딸의 방에 문방구에서 파는 비스트 달력을 놓아줬다. 그렇게 비스트는 지민 씨와 어머니의 일상이 되었다. 지민 씨는 “내가 스스로 팬이 됐다기보다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어떤 사랑이든 갑자기 자연 발생 되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고 말했다.
“그 어떤 파도들이 우리에게 와도 휩쓸리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아줄 사람”
‘하이라이트’는 윤두준, 양요섭, 이기광, 손동운 4명의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민 씨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손동운. 지민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애(최고로 애정한다) 멤버가 없었다. 정말 누구 하나 안 예쁜 멤버가 없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그녀에게 ‘최애’가 생긴 이유는 손동운의 말과 목소리 때문이다. 깊고 따뜻한 목소리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 지민 씨는 “그는 평소 영원이라는 단어를 믿진 않지만, 우리(그룹과 팬)가 오랫동안 영원에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나쁜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저는 ‘단군’으로 하이라이트 팬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라이트입니다”
하이라이트의 팬덤 이름은 ‘라이트’. 하이라이트가 가는 길에 빛이 되어달라는 의미에서 멤버들이 지은 이름이다. 라이트라는 단어가 없으면 그룹명이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민 씨는 트위터에서 ‘단군’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라이트다. 시공간 제한이 없는 SNS에서 또 다른 라이트들과 좋아하는 하이라이트 모습이나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돌은 직업 특성상 365일 팬들 앞에서만 활동을 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SNS에서는 팬들끼리 즐길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민 씨가 ‘금손 선생님’이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매일 하이라이트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본인의 애정을 위해 여러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 영상을 캡처해 GIF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포토샵으로 본인이 원하는 모습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지민 씨는 “내가 보고 싶은 하이라이트의 모습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하이라이트의 모습은 다른 팬분들도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일 테니까 SNS에 공유한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가 어떤 작품 속 주인공이 된다면?”
지민 씨는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팬이었다. “만일 하이라이트가 영화 ‘도둑들’의 주인공이었다면?”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이라면?” 이런 생각들로 패러디 영상을 제작해 새로운 세계관 속 영상을 만들어낸 것. 각종 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연결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지민 씨는 또 다른 대표적인 SNS 유튜브를 통해 이 영상들을 업로드한다. 직접 만든 패러디 영상뿐만 아니라 분위기에 따른 하이라이트의 음악을 담은 플레이리스트도 즐겨 만든다. ‘[playlist] 오늘 하루 그댄 어땠나요, 기대고 싶을 때면 하이라이트에게 안겨!’라는 제목의 영상은 최근 조회 수 5만 회를 달성했다.
“제가 만든 영상이 팬이 아닌 일반 대중분들께도 보여지니까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지민 씨가 만드는 여러 영상이 작은 휴대폰 안에 갇혀 있기만 한 건 아니다. 멤버 ‘양요섭’의 생일 카페 진동벨 광고 영상을 제작해 의미 있는 날 특별한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생일 카페는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을 기념해 카페를 대관하여 팬들끼리 일종의 파티를 진행하는 문화다. 지민 씨는 이렇게 일반 대중들에게도 노출이 되는 행사는 더 신경 써서 준비를 한다. 작년 데뷔 12주년 때는 큰 규모의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바로 영화관 ‘메가박스 브랜드관 영상’. 영화상영 전 지민 씨가 만든 12주년 기념 영상이 송출되는 것이다. 지민 씨는 “내가 직접 만든 영상이 일반 광고로 나온다는 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단순히 하이라이트 이야기를 하는 제 계정을 4천명이 본다는 건 엄청난 일이죠”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21일 새 앨범 DAYDREAM으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여전히 강한 팬덤의 화력은 물론이고 14년 차에 새로운 팬들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팬들의 등장으로 팬 계정을 운영하는 지민 씨의 팔로워도 급격하게 늘었다. 지민 씨는 이번 활동으로만 400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는 늘 책임감을 느끼고 계정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지민 씨는 “많은 분들이 봐주시는 제 계정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하이라이트와 팬의 이미지에 피해가 가지 않게 늘 조심한다”고 말했다. 또 “가끔 하이라이트 이야기가 아닌 사소한 제 일상 이야기에도 따뜻하게 반응을 해주신다. 팬이 아닌 ‘박지민’으로 사랑받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하이라이트를 함께 좋아하는 팬분들께 든든함을 느껴요. 같은 편이라 너무 다행이죠!”
‘라이트’는 5년 만에 첫 정규로 돌아온 하이라이트에게 1위를 안겨주기 위해 꽤 고생을 했다. 해외시장 속 k-pop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전에는 문자투표 하나로 좋아하는 아이돌이 상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현재는 글로벌 팬 투표, 유튜브 조회 수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참 많다. k-pop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숫자와 기록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데뷔 14년 차인 하이라이트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복잡한 투표방식이었다. 지민 씨는 “하이라이트가 국내 강세 그룹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글로벌 투표에서 격차가 많이 났다. 그런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격차를 따라잡고 상을 주는 우리 팬덤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뭉클한 소감을 전했다. 또 “가끔은 이 독기 가득한 팬덤이 무섭기도 하다. 상대 아이돌 팬으로 만났으면 무서울 뻔했다(웃음)”고 말했다.
“저는 별 잘난게 없는 평범한 팬이에요. 그래도 ‘단군’이라는 닉네임처럼 이 자리에서 오래 남아 응원할 거에요”
이제 하이라이트는 지민 씨의 모든 것이 되었다. 비스트 노래로 친구들과 함께한 학예회 무대도 팬 사인회를 가기 위해 마음 졸이던 지난날들도 평생 가지고 갈 추억이다. 지민 씨는 “하이라이트를 좋아하며 만난 좋은 팬분들과의 기억도 너무 소중하다. 하이라이트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하이라이트의 엄청난 라이브 실력과 무대가 제 귀를 높여놓아서 다른 가수를 좋아할 수도 없다(웃음)”며 미소를 보였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하이라이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너희의 목소리와 마음과 시선은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와 따뜻함을 줘. 너희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만큼 너희도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늘 너희의 행운을 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