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워싱턴 포스트(WP)' 편집국장 마틴 배런(Martin Baron)은 민주주의에서 저널리즘과 정확한 정보가 항상 필요하다고 말한다”-미국 권위지 WP가 최근 마틴 배런의 퇴임에 맞춰 그에게 헌정한 비디오 뉴스다. 배런은 편집국장 재임 8년 만에 은퇴했다.
배런, 언론·언론산업이 격동하던 시기에 WP를 이끌었다. 특히 WP의 진실보도 전통을 다지며, 도널드 트럼프의 언론자유 침해 및 민주주의 훼손에 맞서 분투했다. WP 140년 역사상 첫 공식 슬로건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를 채택, “우리의 의무는 진실을 찾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연초 편집국 동료에게 은퇴 계획을 전하며 동료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WP의 용기와 독립성에 경의를 보낸다"면서, "WP 구성원들은 최고의 저널리즘을 전달해왔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끝없는 공격에 단호히 맞서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부했다, "WP에 도착한 순간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세계·한국언론이슈-29] 위대한 편집국장의 찬란한 일대기: 저명언론의 세대교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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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는 그런 배런에게, 그가 평소 이론과 실제로 강조하던 저널리즘론을 헌정했다. WP가 트럼프 취임 이후 겪었던 위기 때, 배런이 당당하게 맞선 역사를 새겼다. 트럼프는 종종 WP를 ‘가짜뉴스’, ‘국민의 적’이라 공격했다. 트럼프 4년간, 배런은 주류언론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했다. “우리는 정부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맡은 책무를 수행할 뿐”이라며, WP 저널리즘의 세 가지 중요원칙을 강조했다. 공정-정확-진실 보도다.
권위지 '뉴욕타임스(NYT)' 역시 장문의 ‘마틴 스토리’ 기사를 게재, 그의 은퇴를 역사로 기록했다. 그의 재임 초기, 트럼프가 취임해 WP를 ‘가짜 뉴스'와 ’국민의 적‘이라고 비난했다는 것, 권력의 언론 약화 책동에 맞서 공식 슬로건 ’Democracy Dies in Darkness‘를 채택했다는 것, 재임 중 6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정리했다.
기사에서 NYT 딘 바케이 편집국장은 그의 WP 재직기간을 찬탄했다. WP가 어려울 때 편집국장으로 합류, 편집국을 대폭 확충하며 보도역량을 가다듬고, 디지털 독자 역시 300만 명까지 확충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리 베조스가 WP를 인수, 배런의 편집국 운영 노하우와 결합해 워터게이트 보도의 명성을 되살렸다, 이런 얘기다.
배런은 NYT 인터뷰에서, 현 언론이 직면한 최대 도전을 언급했다, “미국 대중 사이에 자리잡은 음모적 사고”가 그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민주주의에서 대중들은 언론이 직면한 도전과 실행해야 할 바를 보다 활발하게 토론해야 할 것”이라고-.
WP의 비디오 뉴스는 배런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기념강연을 뼈대로 편집했다. “폭행을 당할 때 우리의 답은 분명하다. 공정하고 정확하며 단호하게 업무를 수행하라”, 강연의 메시지다. 이 말은 배런이 WP를 떠날 때 미국 언론인에게 전하는, 그의 기대를 담은 것이다. 민주주의·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그의 관심영역과 노력을 증언한 것이다.
다음은 배런의 로이터 기념강연 요지-.
1. 지난 몇 년 동안, 언론계 인사들은 왜 전통적 저널리즘 규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지 궁금해했다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자의 말이 거짓이라고 보도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 보도를 무시했다. 갑자기 출범한 웹사이트가 허위와 음모론을 성공적으로 전파, 많은 청중을 확보했다.
나는 매체비평가 닐 포스트먼의 대표작 '죽도록 즐기기'를 보곤, 내가 믿었던 답을 얻었다. 매체 소비방식이 ‘인쇄된 단어’에서 TV 신호로 전환하며, 의사소통 방법의 기본을, 나아가 문화와 정치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대중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말한 권위주의 세계를 가장 두려워 헸지만, 포스트먼은 영국의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상상한 미래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붙임 설명]
-‘행동하는 자유인’ 조지 오웰은 현장을 중시한 기자요 진실에 충실한 작가였다. 그는 일찌감치 ‘빅 브라더’의 등장을 예견하며 감시·통제의 디스토피아(dystopia: 역유토피아)를 경고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논하며, 오웰과 함께 미국의 닐 포스트먼을 스쳐 지날 순 없다. 그는 대표작 '죽도록 즐기기'에서, 뉴미디어 시대를 내다 본 예언적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책을 출간하며, 디스토피아를 그린 두 소설, 조지 오웰의 '1984년'과 영국의 천재적 지성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비교했다.
-두 소설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웰은 정보통제 상황을 두려워 한 반면, 헉슬리는 정보과잉에 따른 수동적·이기적 존재로의 전락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진실의 은폐를 두려워하고, 헉슬리는 진실이 압도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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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겉모습이 추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뢰성’ 문제를 보라. 포스트먼이 말했듯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 시대의 신뢰성은 엄격한 검증이 아닌, 드러난 인상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직업에서 뭔가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저널리즘은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분명히 많은 쇼와 공연이 있다. 트럼프는 오늘의 미디어 환경과 정치적 소통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의 쇼맨십은 풍부하다. NYT 칼럼니스트 브레트 스테픈스는 칼럼 ‘우리는 모두 트럼프 쇼의 일부다’에서 경고했다. "사람들이 쇼 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이 점점 쉬워질 것“이라고.
⇨[붙임 설명]배런은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경쟁지 NYT와 협업했다. 두 신문은 트럼프가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던 러시아 스캔들 추적에 함께 나서, 2018년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했다. 딘 바케이 NYT 편집국장은 "이 상은 두 위대한 신문사가 권력의 혼돈을 취재하기 위해 날마다 벌이는 경쟁에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배런은 코로나19 상황 속 트럼프의 브리핑에 기자들을 보내지 않았다. 일종의 선거유세장으로 변해버려 뉴스거리가 없는 대통령 브리핑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브리핑에 저명언론이 기자를 보내지 않는 것도, 그 브리핑에서 뉴스거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2.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옳은지 토론하게 하라, 그것이 우리 시스템이다. 미국 헌법은 언론에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출판할 권리를 보장한다. 특히 미국 건국자들은 ‘왕'이 아닌 ’민주주의‘를 창조했고, 수정헌법 제1조까지 마련했다. 곧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다. 언론의 임무는 민주주의 시민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고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다룰 질문 몇 가지가 있다. 대중은 언론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보는가? 언론이 정부의 책임을 묻는 보도를 할 때, 대중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언가를 사실로 설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몇몇 냉정한 통계가 있다.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절반(46%)은, 뉴스 매체가 트럼프와 행정부 뉴스를 조작한다고 믿고 있다.
WP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 첫 한 해 동안 2000건 이상의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집계했다. 트럼프는 사실과 허구의 혼란에 뚜렷한 공헌을 했다. 그는 취임 4주 만에, 언론을 ‘미국 국민의 적’이라 불렀다. 그는 언론의 애국심에 의문을 제기하며, ‘언론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전통 언론의 신뢰를 약화하려 근거 없는 음모 이론을 퍼트린다. 그들이 퍼트린 근거 없는 주장에는, 세계무역 센터가 무너진 날 뉴저지에서 수천 명의 무슬림이 축하행렬을 벌였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3500만 명이 불법투표를 했다고 주장했다. WP·NYT가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한 러시아 스캔들 보도 역시, 트럼프는 ‘가짜뉴스’라며 얼마나 몰아붙였나.
"대통령의 끝없는 과장, 증거 없는 비난, 믿을 수 없는 같은 거짓"-'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 내용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거짓말’을 계속했다. 이 때문에 언론의 신뢰도는 날로 추락하고 있다. 미디어 소비의 진영논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2020년도 ‘디지털 뉴스 보고서’는 최근 미국 온라인 미디어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양극화되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3. 우리 앞엔 언론 대응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 있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 언론에의 징벌적 배상을 요구하며 언론제소를 말한 적이 있다. 뉴스 매체의 사소한 오류는 그 언론사를 무너뜨리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포착되고 무기화된다.
대통령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적극 활용하고도, (언론자유 규제입법을 부정한) 제1차 수정헌법이 언론을 과보호한다고 말한다. 그는 (언론보도의 면책요건을 두텁게 보장한) 미국 명예훼손법을 '가짜와 수치'라고 불렀다. 나는, 언론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를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언론은 그런 협박 앞에 겁을 먹지 않았다. 언론은 움츠려 드는 대신, 여러 면에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WP는 1935년 선언한 보도원칙에 영감을 얻고 있다. "신문의 첫 번째 임무는 진실이 확인될 수 있는 만큼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최근 구독자 및 독자 댓글 급증 현상을 보면, 많은 사람은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사무실의 유리 벽에 독자들의 격려 글 쪽지가 붙어있다. “이 긴장과 불신의 시대에 진리를 대신하여 일해 주셔서 감사하다.. 미국인들은 철저하고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분을 믿고 있고, 민주주의에서 귀하의 역할에 감사드린다”, “나는 자유언론이 오늘보다 중요한 적은 없다고 본다. 나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 WP를 읽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트럼프)의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냥 우리 일을 하라. 정직하고, 영예롭고, 진지하고, 공정하고, 정확하고, 또한 흔들리지 않게 하라. 우리는 또한 더 투명해야 한다. 독자들은 우리가 옳고 공정하고 명확한 것을 넘어, 보도과정의 투명함도 요구하고 있다.
5. 언론과 대통령(권력)의 긴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최근 개봉 영화 ‘더 포스트’(2018.12)는 그 역사의 일부다. 미 국방성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주요내용을 폭로한 특종은 NYT가 한발 앞서 했지만, 발행금지 조치를 당한 NYT 편에서 WP가 그 후속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두 신문과 닉슨 대통령 사이의 대립이다.
[⇨붙임 설명]당시 WP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발행인에게 말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결국 WP는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보도를 강행한다. ‘펜타곤 페이퍼’ 작성자 대니얼 엘즈버그는 이 사건을 반역행위에 가깝다고 한 대통령에 경악, “어떤 기관과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반역이라면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과 같다”고 반발한다.
WP는 (정부의 보도금지 요청을 다룬) 대법원에서 6 대 3으로 승소한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간명하다. “이 나라의 건국이념에 따르면,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고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다”
대법관의 표현은 오늘날 WP 편집국과 다른 주요 언론의 도전정신을 잘 대변한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우리에게 영혼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 깨우쳐야 한다. 척추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배런 국장은 결국, 언론산업의 격변기에, 언론자유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언론자유 투쟁에의 헌신을 강조했다.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가장 날카로울 때, 저널리즘의 미래와 독립적 저널리즘의 가치를 추구하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권력과 언론의 갈등관계’를 증언했다.
그는 퇴임하며, 새삼 저널리즘의 중요원칙을 되새겼다. 공정-정확-진실 보도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 죽는다’는 WP의 경구와, “우리의 의무는 진실을 찾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말로,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언론정신은, 오늘을 사는 세계 언론인의 표상이라 할 만 하다. 마틴 배런, ‘위대한 언론인’으로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