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서 연간 1400여 건 치료...재활·복귀·연구까지 '1인 4역' / 김유리 기자
푸드득, 힘겨운 날갯짓 소리가 나더니 이내 퍽 소리가 난다. 새 한 마리가 종이상자에서 나오자마자 얼마 못가 유리창에 쳐 박고 쓰러지고 만다. “제가 잡고 있을게요. 어서 넣을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라며 정선희 간호사의 외침이 들린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야생 동물 새매가 구조돼 들어온 것. 충돌사고로 다리를 다쳐 길가에 있던 새매를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해 구조했다. 다친 야생동물들이 치료를 하기 위해 오는 이곳은 부산시 사하구 낙동남로에 위치한 야생동물치료센터다.
일반인이 곧바로 관람할 수는 없지만 예약을 하면 센터를 둘러볼 수 있다. 부상 야생동물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치료 및 재활, 방사를 통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곳이다. 직원은 총 6명으로 야생동물보호팀장 아래 세 명의 수의사와 간호사 한 사람, 그리고 행정직 직원 한 명이 근무하고 있다. 근처 시설로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및 낙동강하구 탐방체험장이 있다.
야생동물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매나 독수리와 같이 보기 드문 동물들은 사람들을 피해 숨어 있을 뿐이지 우리 근처 곳곳에 살고 있다. 다친 동물 대부분은 전선과 충돌하거나 유리창 너머의 나무 등을 보고 유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돌진해 뇌진탕, 뼈 골절 등을 당한다. 이곳에서만 1년에 1100~1400건의 야생동물을 치료하는데, 그 중 80% 이상이 조류다. 특히 조류는 비행을 위해 뼈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데 그 때문에 골절되기 쉽다.
야생동물들은 죽기 직전까지 사람들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탈진돼 더 이상 도망갈 힘이 없어질 때가 돼서야 구조된다. 그마저도 다리를 다친 조류들은 날개를 퍼득여 날아가 버려 빠른 치료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에서 치료율이 높은 편인 부산 야생동물치료센터의 치료 성공률이 60%에 그치는 이유다.
2008년 처음 개관한 이후로 꾸준히 부산과 부산 인근 야생동물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곳의 시설은 치료실, 입원실, 보호장, 교육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개 시민의 제보나 구청 또는 119의 신고로 다친 동물들이 센터에 들어온다. 외부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다 이곳 야생동물치료센터로 들어왔다는 수의사 양진원 씨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는 수의사들은 많다”며 “여기 야생동물치료센터는 누군가 한 명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다 접고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양 씨는 “까마귀가 보은을 해준 적도 있다”며 “치료해서 돌려보낸 까마귀가 매일 아침 병원 입구에 지렁이를 물어다 놓았다”고 말했다.
다친 동물이 들어오면 우선 치료를 하고 이후 재활을 통해 야생으로 복귀시킬 준비를 한다. 이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킨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만 간혹 센터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는 사실은 복귀 훈련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다. 백로가 점심 때 마다 날아와 모이를 먹고 가는 등 어릴 때부터 이 곳 야생동물치료센터에서 지내 각인효과가 생겨 문제가 되는 것. 동물로서 살아가야 하는데 자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야생동물치료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독수리들도 많다. 부산에 있는 이들은 북쪽 지방에서부터 먹이 싸움에 져서 남쪽으로 밀려서 온 최약체인 셈이다. 실제로 독수리는 흔히 알려져 있는 용맹함과는 달리 참새보다 겁이 많다. 독수리들은 스케빈저(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음식 쓰레기와 똥까지 먹어 치우는 자연의 청소부 동물) 역할을 하는데 하이에나처럼 죽은 사체들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죽은 동물의 사체들이 환경미화원에 의해 빨리 치워지기 때문에 굶어서 센터를 오게 되거나 사체를 먹다 차에 치이는 경우도 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동물은 사람 때문에 다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름철에는 어미 잃은 새들이나 미아 동물들이 많다. 미아 동물은 사람에 의해 유괴나 납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먹이를 구하러 간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새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들을 미아로 착각해 센터로 데려 온다고 한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은 사람의 체취가 묻으면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이처럼 야생동물에 관한 교육이 잘 돼있지 않아 문제가 많다.
이리저리 수의사의 손을 피해 잘도 도망을 다니는 녀석들의 정체는 바로 수달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아로 발견돼 센터로 들어왔다. 수달은 가족처럼 지낸 수의사와는 달리 처음 보는 외부인인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현재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훈련 중이다. 양진원 씨는 “오랫동안 같이 지내서 정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돼 뿌듯하고 시원섭섭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야생동물치료센터에 사람들을 무작정 들이지 않고 예약된 인원만 받는 것도 이유가 있다. AI나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감염병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차단하는 것이다. 오히려 센터에 있는 동물들은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깨끗한 상태이지만 문제는 사람들이다. 동물원처럼 사람들의 입장 제한을 풀어버리면 오히려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AI가 센터에 전파될 수 있기 때문. 그렇게 되면 센터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안락사시켜야 한다.
또한 이곳은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혈액검사 등을 통해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야생동물에 대한 국내 자료가 드물고 외국 자료밖에 없어 지금은 연구 초기 단계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푸드득. 다리를 다쳐 들어온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 소리가 매일 울려 퍼진다. 회복 중인 노루들은 자유롭게 앞마당을 뛰어다니고, 산 근처에 살던 고라니도 내려와 함께 어울려 논다.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다쳐서 들어와 회복한 후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며 거쳐 가는 이곳은 야생동물의 휴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