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에 난생 처음 전남 강진에 갔다. 강진도서관의 ‘독서대학’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강진도서관은 강진군 강진읍에 있는데, 2013년부터 매년 4월에서 11월까지 8개월 동안 지역의 독서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독서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교수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듣는데 군민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인구 1만 5000명 정도의 읍 도서관에서 독서 활성화를 위해 6년째 한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 퍽 놀랍다. 나는 ‘독서대학’의 15번째 강연자였다. 먼 길임에도 강의 요청에 쉬 응한 것은 감동적인 기획과 이번 기회에 강진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진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 권의 방대한 저서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의 숨결이 어린 곳이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했던 초당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현재 기와로 되어 있는 지붕을 조만간 원래대로 초가로 만들 것이라 한다), 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했던 시인들을 기념하는 ‘시문학파기념관’이 있고, 한국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를 쓴 김영랑의 생가도 있다.
막상 길을 떠나려고 하니 생각보다 멀었다. 버스로 가려면 4시간 30분, 승용차로는 3시간 30분이 걸렸다. 부산 집에서 사상터미널까지 또 한 시간이 걸리니 차라리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함께 갈 사람을 찾았더니 다행히도 두 명의 후배가 선뜻 응했다.
당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동행이 있으니 멀게만 느껴지던 길이 가깝게 느껴졌다. 여행의 즐거움은 동행과의 수다도 한 몫 한다. 세 여자가 쉴 새 없이 지껄이다보니 ‘예양’이란 마을에 이르렀다. 갑자기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한 풍경이 나타났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장흥군에 속한 마을은 시골 마을치고 표지판이 잘돼 있었다. 그런데 표지판을 따라가 보면 폐쇄되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버려진 듯한 곳이 많았다. 한때 관광 활성화를 꿈꾸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은 후유증인 듯했다.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풍경 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마냥 즐거웠으니까. 우리는 하릴없이 느릿느릿 마을을 배회했다. 그 사이에 짓눌린 것만 같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근래 들어 사회적인 분위기가 꽤나 스트레스 요인이 되었다. 이 땅에서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어떨 때는 벼랑에 매달려 추락 직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매스컴에서 전하는 각종 뉴스를 보고 있으면 염려는 한결 더해진다. 바로 내 이웃의 이야기고,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니까.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동네 슈퍼마켓은 얼마 전 근처에 생긴 대형마트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얼굴이 노랗게 뜬 주인이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머잖아 문을 닫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내 주변에 많은 자영업자들도 유래 없는 불황이라며 연방 우는 소리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목숨을 너무 쉽게 버리고, 남의 목숨을 너무 쉽게 빼앗는다. 좁은 국토에 사람이 재산인데 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태어난다. 정치인들은 일은 제대로 안하고 국민이 낸 세금은 꼬박꼬박 세비로 받아 챙기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새 정부는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놓고 국민의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해 우왕좌왕하고, 야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제 살 궁리만 하고 있다. 듣고보는 것이 모두 이런 것이니 요새는 신문과 뉴스를 접하는 일이 고문 같다. 그렇다고 눈 감고 살 수는 없으니 일부러라도 미담을 많이 찾아 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지경이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데라고 위로라도 좀 받게….
그런 얘기들을 하며 강진읍에 들어서서 다산초당과 사의재를 둘러본 후 강의에 들어가자 30명 남짓의 청중들이 앉아 있었다. 내 소설집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퍽 진지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소설들을 쓰게 되었는지 듣고 싶어했다. 나는 그에 맞춰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았다. 질문도 다양하고 분위기도 유쾌했다.
강의를 기분 좋게 끝내고 나자 한 여성이 다가오더니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응했다. 어차피 늦은 밤, 도서관에서 숙소를 마련해줬으니 걱정 없었다.
도서관을 나서는데 도서관장과 부인이 문 앞에까지 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문 앞에서 두 분의 배웅을 받자 나도 모르게 옷깃이 여며졌다. 그들의 사람에 대한 깍듯한 예의와 세세한 마음 씀씀이가 시골이라고 예사롭게 생각했던 내 마음을 돌아보게 했다.
강진의 밤거리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 길에서 후배들을 만나 함께 그녀가 운영하는 다원 ‘꽃 이야기’로 갔다. 들어서자 실내에 꽃향기가 그득했다. 다원 한쪽에선 형형색색의 꽃들이 모양과 색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라가는 중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잔해들이었다.
그곳에 뜻밖에도 강연장에서 봤던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꽃차 명인인 그녀와 시 공부를 같이 하는 회원들이라고 했다. 먼 곳에서 여성소설가가 왔으니 향기로운 꽃차를 대접하고 싶어 모였다고 했다. 나는 그 따뜻한 마음에 또 한 번 감동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서대학’의 인문학 향기로 행복하다고 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생의 참된 길을 찾으려 노력하고, 행복을 꿈꾼다고 했다. 삭막한 세상에서 행복을 꿈꾸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자긍심이 빛났다. 그래선지 젊지 않은 여인들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나는 강진에서 그 밤을 보내며 사람 향기에 취하고, 꽃향기에 취했다. 그들이 가진 향기의 이름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었다. 그 여운이 가슴에 남아 강진은 이제 그리운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