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박모(19. 경기도 평택) 군은 중학교 때부터 각종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소위 일진들 숙제도 대신 했고, '빵 셔틀'도 했다.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는 물론 건물이 붙은 고등학교에서도 그가 왕따고 호구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는 바로 옆 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폭력에 맞서기 위해 격투기 운동을 시작했다. 박 군은 “내가 격투기를 배운다는 소문이 학교에 나자, 나를 향하던 학교폭력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격투기는 TV에서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이 과격하고 피를 부르는 공격형 실전 무술이다. 높은 실전성 때문에 학교 폭력에 대한 돌파구로 도장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인격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이 위험한 격투기 기술을 배우기를 원하고 지도자들도 싸움 기술 위주로 가르치고 있어 문제다.
“싸울 때 이 팔꿈치 한 대 빡 들어가면, 바로 피 철철 나면서 골로 간다. 그냥 게임 끝나는 거다.” 이 말은 부산의 한 격투기 체육관에서 코치가 초등학생 수련생에게 팔꿈치 공격기술을 가르치면서 한 대화다. 이 대화를 옆에서 들었다는 대학생 이 모 씨는 “운동이 아니라 싸움 가르치는 것 아닌가요?”라며 “위험한 기술들을 아무 생각 없이 학생들이 휘두를까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고등학생 김모(18. 부산 사하구) 군은 격투기를 배운 뒤 학교폭력을 무력으로 되갚았던 적이 있다. 중학교에서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그는 상급생에게 심한 구타와 갈취를 당한 뒤 격투기를 시작했는데,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 학생과 어느날 ‘일전’을 벌이게 됐다. 격투기를 배우면서 그는 어느새 자신도 그 누구와 싸움을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는 그 일전에서 격투기의 위력을 어김없이 발휘했다. 어느 새 그는 일진도 무섭지 않은 싸움꾼이 된 것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싸움은 피했어야 하는 건데, 강해지니까 물불 안 가리게 되던데요”라고 말했다.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이면서 격투기 도장 대표인 이동기(46) 씨는 격투기는 폭력을 다루는 운동이라 안전교육이 어떤 종목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몸이 커지면서 정신적 성숙보다는 신체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큰 청소년들에게는 더 조심스럽게 격투기를 교육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 시기에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창시절부터 여러 체육관에서 격투기를 연마했다는 대학생 이모(25. 부산 사하구) 씨는 안전과 인성교육을 하는 격투기 도장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할지만 가르치지 상대방의 안전을 감안한 공격 교육 같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현재 격투기 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는 고등학생 김모(18. 부산 사하구) 군도 체육관에서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격투기의 위험성에도 체육관을 찾는 청소년들이 증가하는 데는 부모들의 영향이 크다. 이동기 씨는 아이가 왜소해서 만날 맞고 다닌다든지, 어디 가서 좀 안 맞을 수 있게 싸움 잘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면서 체육관을 찾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폭력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다시 폭력으로 남을 괴롭히는 방식을 위해 운동을 싸움처럼 가르치려는 부모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라며 “안전 교육이나 정의감 없이 완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이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의 김모(50)는 조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는 말을 듣고 조카에게 격투기를 건했다. 김 씨는 학교폭력은 근본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완력이 있어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학교폭력은 아이들 문제이기 때문에 강한 아이는 건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격투기를 배운게 한 거죠”라고 말했다.
이동기 대표는 격투기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학교 폭력 해결 수단이 되어 간다는 점을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학교 폭력은 부모들의 사랑으로 해결되는 게 좋습니다”라며 “완력으로 학교 폭력에 대항한다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삐뚤어 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