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넘치는 물량에 택배 노동자 ‘극한직업’ 대열 합류
택배 노동조합, 장시간 노동 문제·불공정 계약 막는 ‘택배법’ 제정 촉구
고객들은 택배기사들에 음료수 전하며 SNS에 격려 메시지 릴레이
하루 15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에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의 죽음은 50년 전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본인의 몸을 태우고 산화한 한 청년의 죽음과 투영되어 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무색하게도 택배 노동현장에서는 ‘사회적 타살’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숨진 택배 노동자만 14명.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일거리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의 삶이 밝혀지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제일 고역인 것은 장시간 근무다. A 택배회사에 근무하는 강 모 씨는 원체 택배 일이 힘든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번 해는 더욱더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는 “코로나가 터지고 늘어난 물량 때문에 매일 10시간씩 일하는데, 근로 교대도 넉넉지 않아 알바마저 없으면 우리는 죽어난다”고 고통을 표현했다.
강 씨의 말처럼, 올해 들어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급증한 원인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바이러스의 확산이 커질수록 택배 물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택배 물량은 13억 4280만 개,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택배 물량은 16억 5314만 개로 23%가량 늘었다.
주말이라는 개념은 택배 노동자에게는 사치스럽다. A 택배회사의 강 씨는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싶어도 먹고 살려면 하루라도 더 (회사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강 씨와 함께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 장성현(22) 씨는 “나 같은 알바생과 똑같은 시급을 받는 정규직들은 돈이 되질 않으니 일주일 내내 풀타임으로 일하는 분도 많다”며 과중 업무에 시달리는 노동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A 택배사의 B 대리점에는 여성 택배 노동자도 있다. B 택배 대리점 여성 김 모 씨는 택배 일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이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처음 (B 대리점에) 들어왔을 때, 반장님은 내가 무거운 택배를 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분류작업만 시키다가 이제는 (택배 물건) 상하차하는 일까지 시킨다. 남성 노동자와 같이 일하는 처지에서 내뺄 수도 없는 상황이라 허리와 어깨에 파스를 달면서까지 일한다”고 노고를 털어놨다.
택배 노동자에게 무리가 되는 것은 단지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가 다가 아니다. 택배 상하차 업무와 다르게 택배기사들은 소비자 측을 직접 대면으로 만나게 된다. A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최 모 씨는 “(나도) 모든 고객에게 빠른 시간 내로 택배를 전달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왜 택배가 빨리 오지 않느냐, 출고는 왜 이렇게 늦냐는 등 구박하며 폭언하는 고객을 마주할 때면 너무 서럽다”고 말했다.
최 씨의 파트너로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 모 씨도 택배 노동자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장 씨는 택배 노동자라고 하면 택배기사들만 생각하겠지만, 대리점 내에서 끝없는 분류작업과 상하차하는 사람들도 엄청난 수고를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택배 상하차 작업이 정말 힘들다. 계속 무거운 것을 등에 지고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이 온몸에 힘을 주고 한다. 이 고통은 1년째 알바를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힘드니 사람들이 자주 관두고, 버려진 업무는 다시 우리 손에 쥐어지니 대리점 내의 악순환”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택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처해있는 열악한 노동현장을 바꾸기 위해 일하는 단체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장시간 노동 문제, 불공정한 계약 문제, 대리점 갑질 등 노동현장 문제를 교섭을 통해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조 강민국 교섭국장은 시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발의되어있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즉 택배법이 연내에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부가 이걸 강력하게 추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 대리점들이 4대보험도 안 들어주는 계약서를 택배 배달원들에게 강요하거나, 배송 수수료를 제대로 책정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등 택배 노동자를 함부로 부려도 무법천지라고 할 만큼 불공정하게 노동자들이 당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다. 지금이라도 택배회사의 각종 불법 노동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금 제정이 추진 중인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즉 택배법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급작스럽게 수요가 많아진 택배 업계를 ‘소화물 배송산업’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늘 주고 받는 택배를 '생활물류'로 규정하고, 택배 노동자들을 '생활물류종사자'라고 칭한다. 택배법은 바로 택배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권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하자는 법이다.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시민 김준영(21) 씨는 “날이 추워져도 땀 흘리는 택배 기사들을 보면 괜히 죄송해질 때가 있다. 지난 여름,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분들의 기사를 읽고 난 뒤라서 그런지 더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택배노동자들이 추진하는 택배법이 빨리 제정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택배기사의 잇따른 사망으로 근무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쿠팡은 새롭게 고용하는 택배기사나 기존의 자체 배송인력인 '쿠팡 친구'에게 같은 근로조건을 적용할 예정이다. 따라서 쿠팡이 고용하는 모든 택배 배달원들은 주 5일 52시간 근무, 4대 보험 적용, 유류비·통신비 지원, 15일 이상의 연차, 퇴직금 지급 등의 근로조건이 보장된다.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적정 작업시간 관리, 분류작업 개선, 고용보험 적용 등의 내용이 들어간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평소 택배 노동현장에 관심이 많던 시민 김현진(51) 씨는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법만이 지켜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인 우리가 관심을 가져줘야 택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관련 법이 더 개선돼서 택배 노동자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택배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지자, SNS에서는 '늦어도 괜찮아' 캠페인이 실시되고 있다. 택배를 이용하는 일반인들이 '#늦어도 괜찮아'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택배 기사에게 음료수나 피로회복제를 전달해주는 사진과 영상이 담긴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백원지(29) 씨는 “나도 자주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이지만 뉴스에서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분들의 소식을 듣고 많이 속상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그분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동참하게 됐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