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콘텐츠코리아랩 초청 강연..."예쁜 캐릭터보다는 다양한 개성 담은 캐릭터가 중요" / 조윤화 기자
캐릭터 이모티콘은 몇 마디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신저 대화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캐릭터 이모티콘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카카오프렌즈의 원작자인 호조의 강연이 지난달 28일 부산 디자인센터에서 열렸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궂은 날씨인데도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들이 모였다.
호조는 지금은 카카오프렌즈, 시니컬 토끼, 싸이 강남스타일 캐릭터 등 유명 캐릭터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원래 게임회사 넥슨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입사 당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입사 후 2년간 게임 유료 아이템 제작을 비롯해 회사에서 정해준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들어온 건 아닌데,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호조 작가는 회사에 ”좀 더 다양한 일을 시켜 줄 순 없겠냐“며 요구하기도 했다. 그의 요구에 회사에서는 "일단 돈 버는 일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 아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갈망이 컸던 그는 블로그에 작업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원작 패러디, 컷 만화 같은 콘텐츠 등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백 개의 콘텐츠가 블로그에 쌓이게 되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 기업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회사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던 즈음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그림 작업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 호조 작가는 그 원인을 '콘텐츠의 분산화' 때문이라 진단했다. 짤방, 컷툰, 패러디물 등 여러 갈래로 분산돼 있는 콘텐츠를 하나로 집중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던 그가 내린 결론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
이후 본격 캐릭터 작업에 뛰어든 호조는 '시니컬 토끼'를 시작으로 싸이 강남스타일 캐릭터,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 카카오프렌즈는 지난 2016년 기준으로 글로벌 매출 705억 원을 달성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캐릭터임을 입증한 셈이다.
호조 작가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선 작업 후 스토리 만들기다. 우선, 단순한 캐릭터를 화면에 띄워놓은 후, 이목구비 위치를 먼저 정한다. 같은 눈, 코, 입이더라도 눈 사이의 거리가 먼가 가까운가, 코와 눈 사이의 거리가 짧은가 긴가에 따라 전체적인 캐릭터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완성한 후, ”이 캐릭터는 이런 성격이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힌다.
호조 작가는 강연 도중 우리나라 캐릭터 산업에 대해 아쉬움도 털어놨다. 기업과 단체 측이 여러 작가에게 캐릭터 작업을 의뢰할 때, 캐릭터의 다양성보다는 아름다운 모습만 요구한다는 것. 그는 "이 때문에 여러 회사, 단체들의 공식 캐릭터는 누가 누가 더 밝고 착하나 경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그는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얘기했다. 그는 ”캐릭터에 들어가는 요소가 많으면, 캐릭터의 특징을 찾기 힘들다“며 ”얼마만큼 덜어내는가가 좋은 캐릭터를 만드는 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캐릭터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더하기보다는 빼는 게 답“이라고 강조했다.
한 시간여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이 이어졌다. 한 청중이 ”다른 캐릭터 작가와 차별화되는 본인만의 장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호조 작가는 ”캐릭터의 밝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와 반대되는 성향, 좀 더 다양한 성향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안모(22) 씨는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하기 위해 많은 수정과 삭제가 이뤄진다는 걸 알게됐다”며 “평소에 자주 쓰던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의 탄생 비화를 작가님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