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ㄹㅅ ㅍㅁㄴㅈㅇ ㅁㄷ?”
지난 5일 부산 경성대학교의 페이스북 페이지 중 하나인 ‘경성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약칭 경대전)’에 마치 암호 같은 초성으로만 이루어진 퀴즈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것은 경성대 중앙도서관 벽에 붙여졌다. 이 초성 퀴즈는 '경대전'에서 학생들의 댓글 논쟁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초성 퀴즈의 정답으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박유경(23) 씨가 쓴 "그래서 페미니즘이 뭔데?"다. 이 퀴즈가 올라온 이유를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박 씨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 씨는 “경성대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의 의의를 잊지 말라고 강조하기 위해 저 퀴즈가 올라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한 이후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와 교육계 등 여러 분야로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도 관련 폭로가 계속되는 미투 운동과 함께 국민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 중 페미니즘을 가장 크게 지지하고 있는 계층으로 대학생이 꼽힌다.
대학가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를 고발하는 포스트잇 시위는 지난 3월 23일 서울의 이화여대생들이 조형예술대 K 교수와 음대 S 교수의 연구실 문에 포스트잇을 붙인 게 시발이었다. 이 밖에도 성신여대, 덕성여대, 연세대 등 수도권 대학에서도 캠퍼스 내 성폭력에 반대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30일 전국 33개의 대학 동아리가 모여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함께 말하면 비로소 바뀐다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어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맞추어, 부산지역 대학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로 동아리를 통해 이뤄지는 이같은 움직임은 부산대학교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지난 3월 27일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예술대 L 교수를 파면시키기 위해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포스트잇 시위를 했다. 이를 주도한 부산대 페미니즘 동아리 ‘여명’의 회장 구름(가명, 21) 씨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부터 시작한 포스트잇 시위를 부산대학교도 이어서 했다. 동아리 여명뿐만 아니라 뜻있는 학우들이 함께 했다”고 말했다.
부산대 페미니즘 동아리 여명은 이름 그대로 부산대의 페미니즘 불을 밝히고 있는 것. 젠더 폭력의 근절을 위해, 이들은 금정 경찰서와 함께 부산대 내에 있는 화장실을 돌며 몰래카메라를 점검하는 활동도 했다. 구름 씨는 “처음엔 부정적인 시선도 있어 조금 힘들었지만, 몰래 카메라 점검 후 학교 사이트에 감사하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편견을 가진 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경성대에서도 페미니즘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경성대 학생들의 젠더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파워페미레인저’가 대표적인 동아리. 이들은 작년 9월에는 경성대 양성평등성상담실과 함께 성폭력 예방교육 및 토크 콘서트를 교내에서 개최했다. 올해 1월엔 <현남 오빠에게>라는 페미니즘 소설을 펴낸 다산 책방에서 이 책을 지원받아 책을 소개하고 소감을 나누는 모임도 열었다.
각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들의 연합 움직임도 시작됐다. 부산대와 동아대, 경성대의 페미니즘 동아리가 지난 3월 9일 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 서면 하트 조형물 앞에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대행진’ 페미니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빠르게 높아지는 학생들의 젠더 의식에 발 맞춰, 페미니즘 관련 강의를 개설하는 대학도 등장했다. 해양대학교와 경성대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의를 하고 있는 안미수 교수는 “전 사회적으로 젠더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대학사회에 몸 담고 있는 대학생들의 젠더 의식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는 중인 것 같다”며 “대학생들이 책이나 영화, 강의 등을 통해 페미니즘의 의미를 인식하고 정리하면서 자신의 삶과 연결하고, 타인의 가치관에 대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성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