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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이 날을 자신이 가진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볼지 여성혐오 범죄로 봐야할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나는 명백히 여성혐오 범죄라고 본다.) 이에 분노한 여성들이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다. 그 중에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 그대로 나도 운이 좋아서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나는 여자는 자고로 조신해야 하고, 요리를 잘 할 줄 알아야 하고, 외모나 몸매를 항상 가꾸어야 하는,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그 날 나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게 편해서 그렇게 했더니, 엄마가 “여자는 다리 벌리고 앉는 거 아니야”라고 하시며 나를 혼 내켰다. 차라리 엄마가 공공장소에서는 그렇게 앉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그렇게 보고 자랐으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여성관을 내가 가지게 된 것도, 엄마가 그런 말을 한 것도, 모두 나의 잘못도 엄마의 잘못도 아니다.
“모든 여자는 아름답다.”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문장이 여성혐오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예쁜 여자들만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니고 모든 여자들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데, 왜 이 문장을 여성혐오라고 하는 것인지 오히려 나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친구와 얘기를 하면서 의문이 풀렸다. 만약 저 문장을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면 아름답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쿵 했다. 왜 여자들은 아름다움을 강요받아야 하지? 그러곤 여태까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적인 것들에 대해 반감이 들었다.
그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각종 갈등과 미투 운동, 탈 코르셋 운동, 혜화역 시위 등 여성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많이 변하고 있다. 아직 배우고 바뀌어야 할 점은 많지만, 정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의 나로는 절대 돌아갈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불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예전보다 예민해지고 화도 많아지긴 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절대 멈추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가 가진 여성 혐오적 관점을 바꾸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 말이다.
혜화역 시위 때 쓰인 팻말에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를 보고 뭔가 모르게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저 말처럼 우리 여성들은 서로의 용기가 되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