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에서 벗어나겠다는 ’탈코르셋 운동‘...화장은 "노동이다" vs "자기만족일 뿐" / 조윤화 기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SNS에서는 #탈코르셋 #탈코르셋인증 해시태그와 함께 화장기 없는 민낯의 사진,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 갖고 있던 화장품을 모두 버린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코르셋은 배와 허리둘레를 졸라매 날씬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교정용 속옷이다. 근래 들어 코르셋은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가부장적 시선을 일컫는 말로 주로 미용 때문에 여성을 옥죄는 ‘꾸밈 노동’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즉 탈(脫)코르셋 운동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커뮤니티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심하다. 한쪽에선 ‘여성이 화장하고 자신을 치장하는 건 자기만족의 하나이므로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꾸밈 노동에 시달리도록 세뇌당했기 때문’이라고 맞선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다는 대학교 3학년생 김모(22, 부산시 금정구) 씨는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은 잘 모르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김 씨는 “나는 화장할 때 자기만족에 의한 것이지 단 한 번도 사회적 강요로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일부 탈코르셋 운동 지지자들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이미 세뇌당해서 자기가 꾸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상당히 불쾌하다”고 말했다.
반면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사회가 여성에게 꾸밈 노동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김진경(22, 부산시 연제구) 씨는 “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늦잠을 자서 화장을 안 하고 갔더니 점장님이 ‘출근할 때는 화장을 좀 하고 오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눈치를 준 적이 있다”며 “그때 점장님은 나랑 같이 일하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단 한 번도 화장하고 출근하라는 눈치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일부 여성들처럼 꼭 반삭을 하고 모든 화장품을 버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운동을 통해 화장기 없이는 집 앞 슈퍼조차 나가지 못하는 여성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주목받았던 가수 연습생 한서희 씨도 탈코르셋 운동과 관련해 한차례 논란을 빚었다. 현재 한 씨는 페미니즘 관련 상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논란의 출발은 한 씨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곧 판매될 가방 신제품 사진을 게재하면서부터다. 한 씨가 공개한 가방은 한 손에 담배를 든 긴 머리 여성 그림 밑에 대표적 페미니즘 문구인 ‘Girls can do anything’이 적혀 있다. 여기서 ‘긴 머리’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일부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여성의 긴 머리는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대표적 꾸밈노동의 상징"이라며 "긴 머리는 페미니즘에 맞지 않는다. 긴 머리 대신 짧게 자른 반삭의 헤어스타일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그런 논리라면 모든 긴 머리 여성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냐"며 "여성에게 짧은 머리를 강요할 순 없다"는 의견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논쟁의 불길이 여타 다른 커뮤니티까지 번지자, 한 씨는 같은 날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자기 뜻을 밝혔다. 그는 “모든 페미니스트가 반삭과 노메이크업으로 다녀야 진정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여성들이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긴 머리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매우 건설적인 토론이 됐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탈코르셋 운동을 두고 남성들 측에서는 “다소 황당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실제로 탈코르셋 관련 기사에는 “언제는 자기만족이라고 화장하더니 이젠 억압이란다”며 부정적 의견을 표하는 댓글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는 관련 기사를 링크하며 탈코르셋 운동을 깎아내리는 글이 여럿 게재돼 있다.
한편, MBC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의 임현주 아나운서는 지난 12일 여성 아나운서에게는 안경 착용이 금기시됐던 암묵적인 룰을 깨고 지상파 뉴스에서 안경을 낀 채로 뉴스를 진행해 화제를 낳았다.
임 아나운서는 SNS에 후일담을 전했다. “매일 진행하던 뉴스에서 단지 안경을 썼을 뿐인데 생각지 못한 관심을 받았다”며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것에 “누구도 그러지 말라고 한 적 없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걸 먼저 하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안경을 쓰든 쓰지 않든 그것이 더는 특별하게 시선을 끌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