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어느 신문에서 서울 모 구청의 장으로 있는 제자의 부마항쟁 39주년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다음 날엔 그 제자 구청장이 안부 전화를 해왔다. "그때 교수님도 힘드셨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모두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 '역사'가 이렇게 40년이나 오래도록 사제(師弟)의 인연을 이어지게 할 줄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1년에 서너번, 때로는 서울에 있는 아이를 통해서 안부와 함께 그의 고향산 갓김치를 보내오기도 한다. 어제는 다음 세번째 시집은 언제쯤 내는냐고 걱정 아닌 걱정도 해준다.
부마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이지만 내게는 그 역사의 큰 물줄기 어느 한 자락에서 사람냄새 나는 제자들을 만났으니 삶의 자그만 보람이고 행복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부마항쟁은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과 독재체제에 시위로 항거한 엄청난 날이다. 1979년 10월, 나는 그때 대학에 부임한 지 2년도 채 안된 풋내기 교수였다. 그날 16일부터 나흘간 교수들은 학교 당국의 시위제지 지시로 부산 번화가인 남포동과 광복동에 나가 대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학생들 시위를 말릴 엄두도 못내고 학생들이 다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르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학생 6명이 검거돼 영도경찰서 구치소에 들어갔고 또 1명은 도피해 다니다 붙들려 실형을 살기도 했다. 실형을 산 제자가 바로 구청장이다. 교수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구치소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제자들을 면회 가는 것과 몇년 후 복학할 때 거들어준 것밖에 없었다. 하긴 나도 이듬 해 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본의 아니게 대학을 떠났고 5년 여만에 복직이 되었지만ㅡ.
아무튼 개인으로 보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두 큰 과거사 물줄기에 묻쳐도 그만이었을 한토막 얘기이다. 그때 힘들었던 제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사회 곳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사회 밑거름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큰 축복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열심히 무탈하게 살아가길 기도한다. 이 기도가 하늘에 닿아 틀림없이 그러리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