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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 ‘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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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영화 ‘툴리’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2.10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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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툴리'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툴리'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모성은 타고난 여성의 본능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감정의 일종인가. 이렇듯 세상엔 모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참고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권 운동가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란 책에서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나는 모성을 여성의 타고난 본능으로 보는 시선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모성을 여성의 본능으로 보는 인식 탓에 출산과 육아의 힘듦이 흐려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식의 말이 어딘가 폭력적이라고 느낀다. ‘엄마니까 당연히’로 시작되는 문장에 이 땅의 수많은 엄마는 한 번쯤 압박감을 느껴 봤을 것이다. 바로 이 압박을 ‘모성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본능이 있다면서 여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을 말한다. 영화 <툴리>는 한마디로 모성 이데올로기에 반격을 가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마를로’는 아직 손길이 많이 필요한 첫째 딸과 발달장애 증세를 보이는 둘째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다. 극 초반 셋째 아이까지 임신 중인 마를로는 독박육아에 지쳐 미처 자신을 돌보기에는 여력이 없는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를로의 오빠는 비용을 대신 내줄 테니 야간보모를 들이는 것을 권유하지만, 그녀는 “인생을 하청에 맡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러다 셋째 출산 이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지친 마를로는 결국 야간보모 ‘툴리’를 들이고 잠시나마 안정을 찾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야간보모 ‘툴리’는 사실 마를로의 젊은 시절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자 ‘마를로’는 젊은 시절의 나, ‘툴리’를 소환해 지워져 가는 자신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마를로의 정신분열 증세를 두고 영화평론가 송경원 씨는 “육아로 인해 자아가 지워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해 이야기가 소비해온 모성 신화를 해체시키는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이 영화를 그저 여성의 ‘독박육아’에 대한 불합리함을 고발하는 영화로 보면 큰 오산이다. 영화 <툴리>에서 악역은 없다. 영화는 마를로의 남편을 적극 옹호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넉넉지 못한 형편에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밤늦도록 야근하는 아빠, 늦게까지 일하느라 집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양육 부담을 할 수 없는 정도로 그려지고 있다. 즉 <툴리>의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은 “독박육아가 개인의 도덕심 결여, 책임의식 부족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을 확장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성도 출산휴가를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사회였다면, 마를로는 출산 직후 세 아이를 혼자서 감당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정신분열을 일으킬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큰 사고를 겪고 난 뒤 마를로가 가족의 품 안에서 회복을 한다는 식의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유독 이 결말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초·중반에서는 사회에서 엄마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압력,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육아에 미치는 영향 등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짚었으면서,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가족 안에 있다고 속 편하게 해결하려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영화 <툴리>는 ‘일단 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는 다 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식의 시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재관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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