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과 올해 초 ‘인천 여고생 집단폭행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예방 기능이 부각되면서 법원이 주도하는 통고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통고제도는 범행을 저지른 소년의 보호자나 학교 등 '통고권자'가 교육적, 예방적 차원에서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건을 법원에 접수하는 제도다. 1963년 소년법 제정 때부터 도입됐지만 학교장과 학부모 등의 무관심으로 그동안 사문화돼왔다.
부산에서는 통고제도가 도입된 지 49년만인 지난 2012년 처음 활용된 바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산가정법원이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보다 교화와 선도에 집중하는 통고제도 활성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부산가정법원은 17일 법원 대강당에서 '통고제도: 교사와 학생의 아름다운 동행'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에는 부산 지역 초·중·고교 학교장 220여 명이 참석했다.
구남수 부산가정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법원은 통고제도로 접수된 사건을 전문가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처벌보다는 당사자 소년의 성향이나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통고제도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또 "학교에서 통고제도를 활용하는데 다소 장애물이 있다고 듣고 있다"며 "향후 통고제도가 적극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가정법원 소년 1단독 이호철 판사는 '소년 보호 재판과 통고제도'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통고제도는 소년 문제의 초기 단계에서 법원이 신속하게 개입해서 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고제도를 통해 교육을 받고 문제를 해소할 경우, 해당 문제 소년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 법원의 처리 내용이 범죄경력조회나 수사자료표에 기재되는 등의 불이익을 없어 소년의 장래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호철 판사는 특히 통고제도의 ‘신속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소년 보호 사건이 기존의 방식대로 경찰서, 검찰청 등 여러 수사기관을 거치면 사건이 처리되기까지 최소 6~7개월이 걸린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문제 소년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고제도를 활용할 경우 사건이 법원에 바로 접수돼 신속한 처리가 가능해지며, 문제 소년의 교화도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교육현장에서 통고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이 학교 측의 심리적 거부감이라고 진단했다. 학교 측에선 통고제도가 ‘자기 학생을 법원에 고발하는 행위’로 비쳐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이 판사는 ”문제를 저지른 소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교육과 선도에 있다“며 ”법원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힘쓸 테니 통고제도를 활용하는 데 학교가 적극 나서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 판사에 따르면, 문제 학생이 법원이 명령한 특별교육 이수조치 등을 따르지 않을 경우 보호처분의 수위를 변경할 수 있다. 또 불이행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 소년원에 위탁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범죄경력은 남지 않는다.
또 통고절차 중 피해자도 조사하게 돼 있어 피해자가 통고 재판 진행 상황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통고 재판 절차 중 문제 학생과 피해 학생간의 ‘화해 권고’ 조치도 상황에 따라서 내려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통고제도 절차 과정을 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권침해 사안의 경우 가해자가 학생이기 때문에 피해자인 교사는 당연히 재판 진행 상황을 알게 된다고 이 판사는 설명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송도초등학교 신원식 교감은 ”통고제도를 잘 몰랐는데 이호철 판사님의 강연을 듣고 많은 도움이 됐다“며 ”더 공부하고 보완해서 통고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