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가 소리 없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이라던가.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출세나 성취에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자는 주장일 터다. 북핵 폐기를 위한 협상이니, 지방선거니 해서 거대 담론이 가득 찬 세상에서 쉬어가자는 뜻에서 오늘은 ‘소확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하자.
최근 들어 ‘소확행’의 의미를 설파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여러 편 선보였다. 대표적인 게 tvN의 <숲 속의 작은 집>이란 프로그램. 남녀 영화배우가 외딴 곳 작은 집에서 각각 혼자 살아보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자연 속에서 원시적인 삶을 스스로 선택한 ‘괴짜’들의 일상을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벌써 7년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이기도 하다. KBS는 '아저씨'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나물 캐는 아저씨>를 새로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바쁜 도시 생활에서 상처 입은 20대 여성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시골집에서 혼자 살면서 텃밭을 일구어 직접 키운 농작물로 직접 요리를 하는 삶을 그린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현대인에게 ‘소확행’의 의미를 곱씹게 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소확행’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라고 한다. 1986년 나온 그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했다고. 이 에세이에서 하루키가 정의한 ‘소확행’은 이런 것들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나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처럼,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따위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
‘소확행’이란 말은 ‘미닝아웃(Meaning out)’, ‘케렌시아(Querencia)’ 등과 더불어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선정됐다. ‘미닝아웃’은 소비자 운동의 일종으로서, 정치적ㆍ사회적 신념과 같은 자기만의 의미를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케렌시아’란 스페인어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을 뜻한다는데, 그렇게 보면 ‘미닝아웃’이나 ‘케렌시아’ 역시 ‘소확행’과 연관성이 있는 단어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도 이제 경제적 풍요, 사회적 출세 등을 좇아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정신없이 사는 삶에 넌더리를 내고 ‘느림과 비움’의 삶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삼포세대’니 ‘오포세대’, 심지어는 ‘칠포세대’니 해서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취업, 경력, 집을 포기하는 대신 눈앞의 주어진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는 요즘 젊은 세대의 슬픈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눈물겨운 단어이기도 하니 마냥 예찬만 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구석도 없지 않다.
2.
우선 ‘소확행’을 콘셉트로 삼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부터 일별해 보기로 하자.
앞에서 소개한대로 배우 소지섭, 박신혜가 출연하는 tvN의 <숲 속의 작은 집>은 인적이 없는 숲 속에서 혼자만의 삶을 꾸리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당연히 전기, 가스, 난방 등이 제공되지 않는 ‘오프 그리드’(off-grid) 삶을 추구한다. 출연자들은 휴대폰조차 반납하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갖고 산다. 출연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하고 휴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빗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자연을 바라본다.
지난 2012년 8월 첫 방송된 후 벌써 7년째 방송되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는 평균 시청률이 종편으로선 꽤 높은 5~6%다. 다양한 채널에서 재방송도 된다. 개그맨 윤택, 이승윤이 번갈아 출연하며 자연에 묻혀 사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독특한 삶을 재구성해낸다. 자연 속에서 약초를 뜯고 물고기를 잡고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쁜 도시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은 사는 현대인에게 <나는 자연인이다>는 대리만족을 준다. 그래서 중장년 남성들의 시청률이 압도적이라고.
KBS는 방송인 김준현, 안정환과 배우 김응수, 가수 최자 등이 출연하는 <나물 캐는 아저씨>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도시 남자 6명이 시골로 가 나물을 캐 밥상을 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채널A의 <우주를 줄게>는 밤하늘의 별이 주는 감흥을 이야기와 음악으로 담아낸 예능 프로그램이며 MBC의 <이불 밖은 위험해>는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소확행’을 담아냈다.
‘소확행’을 주제로 삼은 장르는 영화도 마찬가지.
얼마 전 개봉된 <리틀 포레스트>가 대표적이다. 교사 임용시험, 연애, 취업 등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에서의 피로한 삶을 중단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扮)은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扮)와 은숙(진기주 扮)을 만난다. 직접 키운 농작물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한다.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이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다는 줄거리. 이 영화는 자연의 아름다움, 직접 만든 소박한 밥상에서 휴식과 위로를 찾을 수 있다는 평범한 가르침을 준다.
그런가 하면 전고운이 감독한 <소공녀>는 작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큰 것을 포기해야 하는 슬픈 청춘들의 ‘소확행’을 보여준다. 일당 4만 5000원에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미소(이솜 扮)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마시는 위스키와 담배. 하지만 새해 들어 담뱃값이 오르자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지키기 위해 과감히 아늑한 집을 포기한다. 그리고 서울 곳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닌다.
지난해 개봉된 프랑스 영화 <더 미드와이프>(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도 소확행을 다룬 영화. 35년 전 갑자기 떠났던 그 날처럼, 한 통의 전화와 함께 다시 돌아와 클레어(카트린 프로)의 일상을 뒤흔든 새엄마 베아트리체(까뜨린느 드뇌브). 성격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 취미 생활까지 모든 게 다른 둘 사이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윽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채식주의자인 '바른생활' 딸과 육식주의자 철부지 새엄마의 일상과 화해, 힐링을 조명한다. 센 강 옆에서 사랑스러운 텃밭을 일구는 클레어의 ‘소확행’은 행복 지수를 끌어올리고, 카드 도박을 하면서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베아트리체의 면모는 유쾌함을 준다.
하기야, ‘소확행’을 다룬 작품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소확행’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비되기 전에도 일상의 작은 행복 찾기를 소재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은 꾸준히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을.
3.
‘소확행’이란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말이라지만, 세계 각국엔 비슷한 함의를 가진 말들이 많다.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등등.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을 뜻하는 ‘라곰’은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을 뜻한다. 8~11세기 바이킹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스웨덴에서 중시되는 덕목으로, ‘팀을 둘러싼(around the team)’을 뜻하는 말인 ‘라게트 옴(laget om)’에서 유래했다고. 야심찬 계획보다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삶의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나를 아끼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거다. 이러한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적당하게 소유하며, 자신을 둘러싼 지역 사회, 환경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말하는 동양의 ‘중용(论语)’과 비슷한 개념인 셈.
오캄은 프랑스어로 ‘고요한’, ‘한적한’을 뜻하는 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심신이 편안한 상태나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프랑스에서는 발음이 유사하게 나는 알파벳 네 글자인 ‘OKLM’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극장이나 카페, 공원 같은 데서 홀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위안을 얻는 사람들인 ‘라운징족(lounging族)’의 삶을 연상하면 될 듯.
덴마크어 ‘휘게’ 역시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단어다. 이를테면 '율레휘게'(julehygge)는 ‘크리스마스의 행복’이란 뜻. 높은 행복지수를 자랑하는 덴마크 국민들의 행복 비결로 꼽힌다. 19세기 덴마크 문학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로 현대로 오면서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문화적 정체성을 의미하게 됐다. 2016년 마이크 비킹 덴마크행복연구소장이 발간한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A Little Book of Hygge)〉가 영국에 출간된 것을 계기로 BBC를 비롯한 서구 언론이 ‘휘게’를 소개하면서 그 열풍이 전 세계로 번졌다. 콜린스 영어 사전은 2016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브렉시트(Brexit)’ 다음으로 ‘휘게’를 꼽았다.
이 밖에도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킨포크 라이프(Kinfolk Life)’도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회현상을 일컫는다. <킨포크(KINFOLK)>란 미국 북서부의 중소도시 포틀랜드(Portland)에서 출간되는 계간지의 이름. ‘킨포크(kinfolk)’의 사전적 의미는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포틀랜드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잡지를 만들면서 ‘소확행’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던 것. 주민들은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고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누린다. 또 엄선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오가닉 레스토랑을 비롯해 지역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맥주만을 취급하는 펍과 브루어리에서 한적한 삶을 즐긴다.
하기야 2000년 초반에 ‘웰빙’이란 단어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웰빙 열풍’이 불었고, 10여 년 전에는 치유를 뜻하는 ‘힐링’이란 단어가 상륙해 널리 퍼졌으니 우리 사회에서 ‘소확행’에 대한 욕구가 어제오늘의 일만도 아닌 셈이다.
4.
‘소확행’을 콘셉트로 삼는 건 영화나 드라마 뿐만도 아니다. 최근 들어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이 큰 제품을 택하는 이른바 ‘가심비(價心費)’를 따지는 소비 트렌드도 확장되고 있다.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뜻하는 ‘가성비(價成比)’를 넘어서 다소 비싸거나 객관적인 품질은 떨어지더라도 심리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구매하는 행위 말이다. ‘가심비’와 비슷한 뜻으로 ‘플라세보(placebo)소비’란 말도 있다. ‘플라세보(placebo)’란 실제로는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을 말하는데 어떤 약물의 효과를 시험하거나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하여 투여한다. 환자가 이 속임약을 진짜로 믿게 되면 실제로 좋은 반응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플라세보 효과’라고 한다. ‘플라세보 소비’도 여기서 온 말. 이 단어 역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선정됐다.
‘가심비’, ‘플라세보 소비’란 말을 타고 기업들도 발 빠르게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성수기를 앞둔 아이스크림 업계가 ‘소확행’의 바람을 타고 있다고. 이른바 ‘프리이엄 아이스크림’이 그것이다. 닐슨코리아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를 조사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 성장하며 약 1116억 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올해는 그런 소비추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소확행과 가심비가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간편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 제품이 소비자의 주목을 끄는 것. 식음료업계는 과일 원물 함유량을 월등히 높여 품질을 강화하거나 디저트 컨셉의 제품을 선보이는 등 아이스크림 프리미엄화에 한창이다. 어떤 곳은 열대 과일인 리치와 망고, 나타드코코(코코넛젤리)를 사용한 과일 디저트 콘셉트를 내놓기도 했고 또 어떤 회사는 프랑스 크림치즈를 넣은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소확행’ 바람은 외식업계도 마찬가지. 잔치국수와 돈까스를 콜라보한 ‘돈잔’ 메뉴를 선보여 2030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도 있고 양갈비를 콘셉트로 한 끼 식사에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전문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방부제, 색소 등을 일절 빼고 천연향료로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해 다이어트나 건강관리에 예민한 사람들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한 디저트 업체도 있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출시된 이런 상품들은 계속 신장될 추세다. 한편으로는 일상 속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누리려는 현대인의 심리를 발빠른 자본이 장악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5.
‘소확행’이란 ‘느림’과 ‘비움’을 기조로 한 현대인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뜻하기는 한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는 이런 ‘소확행’은 취업난과 경쟁에 지친 마음에 자기 위안을 주려는 용도(?)로도 쓰이는 건 어떻게 보면 좀 안타까운 현상이다.
요즘 ‘Normal(보통의)+Crush(반하다)’를 합친 신조어 ‘노멀크러시’란 말이 유행이라는데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20대가 보통의 존재에 눈을 돌리게 된 현상을 뜻한다고. 이런 현상을 반영한 유행어가 ‘아무나 되기’란 거다.
이를테면 한국의 세칭 최고 명문대학을 나와 외교관을 꿈꾸던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이 연봉 2000만~3000만 원 수준의 어학교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데 만족한다는 인터뷰가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게 그런 현상의 하나이겠다. 인터뷰 속의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Nobody(아무나)’로 살아도 괜찮더라고요. 사람들은 더 치열하게 살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게 더 좋은 삶이라고 당연한 듯 믿고 있지만, 전 ‘아무나’로 사는 지금의 제 삶이 꽤 만족스러워요.” 그녀가 입사 면접을 보는데 회의적인 질문이 쏟아졌다고. “우리 출판사에 다니기엔 너무 고스펙이네요.” 급여는 박봉이고 회사도 파주에 있는데, 서울에서 화려한 삶을 사는 친구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냐는 것.
요즘 인기를 모으는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의 안주인인 가수 이효리가 어린 소녀에게 던졌다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는 말에서 ‘아무나 되기’란 말이 젊은이 사이에서 열풍처럼 번졌다고도 한다. 지난해 8월 JTBC <한끼줍쇼>에 출연한 가수 이효리가 초등생 소녀에게 던진 이 말은 20, 30대 젊은이들에게 열광적 환호를 불러일으키며 노멀크러시를 확인시켰다는 것. 이 말에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는 “말할 수 없이 해방감을 느꼈다”, “눈물 나게 좋은 말”, “역대급 카타르시스” 같은 반응이 범람했던 것.
글쎄, 어떻게 보면 ‘아무나 되기’는 나쁘지 않은 삶의 자세인 것 같기도 하다. 경쟁에 부대끼며 남의 시선에 쫓겨 자기가 원치도 않는 삶을 쟁취하느라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잃는 사람들에게 ‘아무나 돼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건 신선하게 느껴질 법하다. 위안도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아무나 돼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이효리란 가수는 그 스스로가 이미 아무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확행’은 분명히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는 하다. 그러나, 행여라도 그게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자기방어의 기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대목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글쎄, 내가 ‘꼰대 세대’가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런 노파심만 뺀다면 ‘소확행’은 좋은 말이다. 치렁치렁 필요 없는 스펙을 쌓거나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모으느라 아까운 삶을 낭비하지 않고, 시골의 길섶에 핀 작은 야생화 하나라도 자세히 살피며 작은 행복을 찾는 삶은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니겠는가.
추기: 지난 11개월간 연재돼 온 ‘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은 이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동안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